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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현지에는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86~1761) 친필 시가 남았으니 그 시 전문은 아래와 같다.
신라백제 전한 전한 이름 수송대愁送臺더니
요수 선생이 개명한 이름은 암구대巖龜臺라
퇴계가 이름을 내려 수승대搜勝臺라 했으며
신씨 집안 유풍으론 요수대樂水臺라 한다네
羅濟傳名愁送臺
樂水改名巖龜臺
退溪錫名搜勝臺
遺風誦名樂水臺
관아재 조영석은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1707~1769) 함께 삼재로 일컬어지는 화가라, 이 시는 그가 1738년 안의현감으로 부임해 5년간 근무하다가 1743년(계해년) 임기가 만료되어 떠날 때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수승대는 삼국시대에 愁送臺로 불리다가, 조선시대로 들어와 愼權이 차지하고부터는 巖龜臺로 불렸고, 1543년 이황이 搜勝臺로 개명하였으며, 신권의 후손들은 선조의 호를 따서 樂水臺라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은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연구책임자 김덕현)이 수행한 《거창군 용역보고서 거창 수승대 보존관리 종합정비계획》(2010. 12.)에 의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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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수승대搜勝臺 vs. 수송대愁送臺 논란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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