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구황동 석실분 발굴에 앞선 삽질이다.
사진 내장정보는 2005.3.10인데 맞는지 모르겠다
윤근일 선생이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으로 오야붕이셨고, 윤형원은 저때 왜 찡깄지?
아....그러고 보니, 박물관에 연구소파가 몇몇 있는데, 당시 연구소-국박-민박 세 기관 학예직 교류 인사 차원에서 국박에서 파견되어 경주연구소 학예실장으로 근무할 때였구만.
꺾다리 이채경과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미였던 차순철이 보인다.
이 석실분은 도굴은 명약관화했지만, 혹시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용강동 발굴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굴이 생각보다 더욱 철저해 실망한 기억이 있다.
(2017. 7. 11)
이에 대한 당시 관련자들 증언
차순철...도굴이 심했지만 석실분의 출입시설이 변화된 모습이 확인되었고, 인화문토기의 편년 기준자료가 확인된 점이 의미 있습니다. 이 자료 덕분에 이동헌씨의 인화문토가 편년안의 기본틀이 강화된 바 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상반기에 발굴하고 하반기에 보고서를 발간한 사례입니다. 아마도 지금 국비발굴조사에서 요구하는 당해년도 발굴조사결과를 당해년도에 보고서를 발간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윤형원...이때, 황성동 석실분 발굴은 찡긴게 아니라 '책임조사원' 이었음~ㅋㅋ. 내가 '연구소파'라기 보다는 고고학을 기반으로 박물관에서든 연구소에서든 해야할 일은 한다는 사실.
이채경...구황동 석실분이 아니라 황성동 석실분임. 이건 순전히 처음부터 내가 기획해서 국비로 발굴한 후 사적 제476호로 지정까지 한 것임. 오래전부터 이 고분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으나 토지주는 끝까지 고분이 아니라 경작과정에 밭에서 나온 돌들을 모아놓은 무더기라고 우기고 있었음. 그러다가 이 땅에 체육도장을 짓겠다고 건축허가신청을 함. 그래서 일단 발굴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자고하여 국비 7천만원을 받아서 일부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토록 한 다음에 보존조치시키고 주변지역까지 묶어서 사적으로 지정한 다음에 지정구역의 사유지를 매입하여 현재는 잘 정비보존되어 있는 유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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