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계곡만필谿谷漫筆》이 정리한 담배에 대한 일련의 논급은 그 저자 계곡谿谷 장유張維(1588∼1638) 생전에 담배가 비로소 한반도에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아래 글에서 보듯이 불과 20년 만에 전국에 걸쳐 퍼진 상황을 생생히 증언한다는 점에서 고래로 담배 역사를 논할 때는 항용 그 제1 증언으로 간주되었으니, 비단 담배 역사만이 아니라, 새로운 산물이 어떻게 그 땅에 정착해 대세를 형성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현재보다 훨씬 통신사정이 좋지 않은 조선시대라 해서 그 유행이 더뎠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행은 순식간에 번지기 마련이다. 일단 좋다는 소문이 나면, 무엇보다 그것이 기호품으로 채택되기만 하면, 그것이 돈벌이가 되기만 하면 누가 하지 말라 해도 다 하게 되어있다.
계곡만필 제1권 / [만필(漫筆)]
남령초 흡연南靈草吸煙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흡연(吸煙)하는 법은 본래 일본(日本)에서 나왔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담박괴(淡泊塊)라고 하면서, 이 풀의 원산지가 남양(南洋)의 제국(諸國)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년 전에 처음으로 이 물건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초동 목수(樵童牧豎)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
이 풀은 《본초(本草)》 등 여러 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성질이나 효능(效能)을 알 수는 없으나, 다만 맛을 보니 매우면서도 약간 독기(毒氣)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을 복용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저 태워서 연기를 들이마시곤 하는데, 많이 들이마시다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나 오래도록 피운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하여 지금 세상에서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백 사람이나 천 사람 중에 겨우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지난번에 절강성(浙江省) 자계(慈溪) 출신인 중국 사람 주좌(朱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중국에서는 남초(南草)를 연주(煙酒)라고도 하고 연다(煙茶)라고도 한다. 백 년 전에 벌써 민중(閩中)에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세상에 두루 퍼져 있으며, 적비(赤鼻)를 치료하는 데 가장 효력을 발휘한다.”
하였다. 이에 내가 묻기를,
“이 물건은 성질이 건조하고 열이 있어서 필시 폐(肺)를 상하게 할 것인데, 어떻게 코의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니, 주좌가 대답하기를,
“응체(凝滯)된 기운을 흩뜨려서 풀어 주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그 말도 일리(一理)가 있다고 여겨진다.
[주-D001] 담박괴(淡泊塊) : tobacco의 음역(音譯)으로, 혹 담파고(淡巴菰), 담파고(淡婆姑)라고도 한다.
[주-D002] 본초(本草) : 유명한 약서(藥書) 이름이다. 예로부터 본초라는 이름을 붙인 약서(藥書)들이 많이 나왔는데, 명(明) 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이를 52권으로 종합 정리하여, 1892종의 약물(藥物)과 1만 1천여 수(首)의 약방(藥方)을 수록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저술하였다.
[주-D003] 적비(赤鼻) : 주독(酒毒)이 올라 코가 빨갛게 부어 오르며 혹처럼 울퉁불퉁해지는 것으로, 주사비(酒渣鼻) 혹은 주조비(酒糟鼻)라고도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南靈草吸煙之法。本出日本。日本人謂之淡泊塊。言其草出自南洋諸國云。我國自二十年前始有之。今則上自公卿下至轝臺蕘牧。無不服之。其草不見於本草諸書。未知性氣及主治。但味辛似有小毒。人未嘗茹服。但燒煙吸之。吸多則亦令人暈倒。久服者不必然。世之不服者。僅僅千百之一耳。頃見華人朱佐。浙江慈溪人也。言中國稱南草爲煙酒。或稱煙茶。百年前閩中已有之。今則幾遍天下。治赤鼻最有效。余問此物a092_581c燥熱。必傷肺。何能治鼻。朱曰。能散滯氣故耳。其言亦有理。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남초가 장차 중국의 차처럼 세상에 쓰일 것이다[南草之用於世殆將如中國之茶]]
내 생각에는, 앞으로 남초(南草)가 흡사 중국의 차[茶]처럼 세상에 널리 쓰여질 것이라고 여겨진다.
차는 위진(魏晉) 시대에 처음 세상에 드러나 당송(唐宋) 시대에 성행(盛行)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마침내 천하의 생민(生民)들이 날마다 쓰는 필수품이 되어 마치 물이나 곡식처럼 되었으므로, 국가에서 전매(專賣)하여 이익을 거둬들이기에 이르렀다.
지금 남초로 말하면, 세상에 유행된 지 겨우 수십 년밖에 안 되는데도 벌써 이처럼 성행을 하고 있으니, 백 년쯤 지난 뒤에는 그 이익을 두고 차와 각축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余謂南草之用於世。殆將如中國之茶。茶自魏晉始著。盛行於唐宋。至於今日。遂爲天下生民日用之須。與水穀同用。國家至榷賣收利。今南草之行甫數十年耳。其盛已如此。百年之後。將必與茶爭利矣。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남초의 효능을 칭송함[稱頌南草之效能]]
옛날에 남방 사람들이 빈랑(檳嫏)을 중히 여기며 말하기를,
“술에 취하면 깨게 하고 술이 깨면 취하게 하며, 배고프면 배부르게 하고 배부르면 배고프게 한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빈랑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극찬한 말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남초(南草)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배고플 땐 배부르게 하고 배부를 땐 배고프게 하며, 추울 땐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땐 서늘하게 한다.”
라고 하는 등 남초를 극찬하는 말이 빈랑의 경우와 아주 흡사하니, 이 또한 한 번 웃을 만한 일이다.
[주-D001] 빈랑(檳榔) : 야자 비슷한 나무 열매로, 소화제와 구충제 등 한약제로 쓰인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古者南人重檳榔。謂醉能使之醒。醒能使之醉。飢能使之飽。飽能使之飢。蓋酷嗜而稱美之耳。今世嗜南草者。亦言飢能使之飽。飽能使之飢。寒a092_581d能使之煖。熱能使之涼。其稱之絶類檳榔。亦可一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세상에서 남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世之攻南草者]]
세상에서 남초(南草)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은, 남초가 만이(蠻夷)에서 나왔고 《본초(本草)》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구실을 삼고 있으나, 이것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주장이 아니라고 하겠다.
《본초》는 송(宋) 나라 휘종(徽宗) 때 편찬되었는데,신농(神農)이 직접 맛본 것이래야 겨우 십 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가 뒤에 나온 것들로서, 당송(唐宋) 이후에 남만(南蠻)에서 선박을 통해 들어 온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령 파고지(破故紙) 같은 것은 약재 중에서도 긴요한 품목에 속하는데, 이것도 남만의 배로 들어온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파고지라는 이름 역시 그 속에 아무 뜻도 없는 것이 담박괴(淡泊塊)의 경우와 아주 똑같다.
대저 남초가 사람에게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으나, 만약 그런 효능이 있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왔는지를 굳이 따져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겠다.
[주-D001] 본초는 …… 편찬되었는데 : 송 휘종 정화(政和 1111~1117) 연간에 조효충(曹孝忠) 등이 수정(修定)한 《정화중수경사증류본초(政和重修經史證類本草)》를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남조 양(南朝梁)의 완효서(阮孝緖)가 365종의 약재를 수록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도홍경(陶弘景)이 다시 365종을 더 포함시킨 《명의별록(名醫別錄)》, 당(唐) 나라 소공(蘇恭),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수정한 《본초(本草)》, 여기에 다시 114종을 더 포함시킨 《당초본(唐抄本)》, 송(宋) 나라 인종(仁宗) 가우(嘉祐 1056~1063) 연간에 장우석(掌禹錫) 등이 82종을 더 포함시킨 《가우보주본초(嘉禹補注本草)》 등이 있었다.
[주-D002] 신농(神農)이 …… 것 : 신농은 태고 시대 삼황(三皇)의 하나인 인황(人皇). 인간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매일 약초를 직접 맛보며 360종을 얻었다고 한다. 《史記 三皇紀》 《通志 三皇紀》
[주-D003] 파고지(破故紙) : 콩과에 속하는 일년초(一年草)로, 그 씨앗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볶아서 보신 조양(補腎助陽)의 한약재로 쓰는데, 요통(腰痛), 슬통(膝痛), 설사, 신허 양위(腎虛陽痿) 등에 효능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世之攻南草者。以出於蠻夷。非本草所載爲口實。此非通論也。本草宋徽宗時所纂。其經神農所嘗者。僅僅什之一。其餘皆後出者。而唐宋以來。從蠻舶來者居多。如破故紙是藥中要品。而出自蠻舶。破故紙之稱。絶無意義。政類淡泊塊。夫南草之能利益人。吾所未知果能有之。不當問其所從來也。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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