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절친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역사평론가, 혹은 강단사학에 맞서는 재야사학 선두로 이름을 날리는 이덕일씨와 나는 초창기에 죽이 아주 잘 맞아 그가 저리된 데는 나도 조금은 일조했다고 본다. 이랬던 사이는 십여년전쯤 그가 기획한 중국 현지 한국고대사 탐방을 계기로 갈라섰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덕일과 원수로 지낸다는 뜻은 아니다. 연락을 끊은 채 사니, 나는 이런 식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이런 무덤덤한 관계가 나중엔 이런저런 관계로 어떤 식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있다는 사실을 적기해 둔다.
국정교과서 질의에 대답하는 국사편찬위원장 시절 김정. 배
반면 만남부터 줄곧 악연인 사람이 있다. 고대사학도 김정배 씨가 그렇다. 내가 김정배라는 사람을 직면 대면하기 시작하기는 이른바 중국에 의한 정부차원 역사공작이라는 동북공정이 문제화하면서 그가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면서라고 기억한다. 그는 아주 젊어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정착하고, 그 분야에서는 나름 이런저런 자리를 굳힌 사람이긴 해서, 그 녹록치 않은 이름은 익히 들었고, 그가 쓴 글 몇 편도 그 전에 읽은 기억이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그가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고, 그것을 운영하는 과정을 살피니, 심대한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이 고구려연구재단은 대략 2년 정도인가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되다가 해체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면서 흡수통합되었거니와, 그것이 이리 결말하고, 김정배가 그에서 퇴출되는 데는 내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믿어도 좋을 만큼 그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한데 재단에서 쫓겨난 그가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렇지만 이 자리 역시 불미스런 일로 축출됐다. 이 무렵엔 내가 그를 접촉할 일이 없으니 맘은 편했다.
이 무렵이었던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초대 국립박물관장으로 그의 제자이면서 동료교수이자, 고구려연구재단 출범에 김정배와 시종일관 함께한 최광식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이 말은 이제 해야겠다. 최 관장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두어번 이런 말을 했다.
"관장님은 고대 티를 내지 마세요. 국박에 고대 출신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십시오. 특히 김정배는 들이지 마십시오."
내 말이었기 때문이었겠는가만 최광식은 적어도 이에서는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꼭 그때문일까마는 그 정도로 최광식은 처신에 신경을 썼으니, 내가 매양 그한테 직접 한 말이기도 하지만, 최광식만큼 고려대 출신이라는 티를 노골로 내면서도, 그만큼 조심해서 고려대 인맥을 조심스럽게 관리한 사람도 없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면, 그의 공직 재직시절, 고려대 인맥이 득세한다는 비난은 거의 없었다고 기억한다. 이때문인지, 아닌지 자신은 없으나, 그는 승승장구해서 이후 문화재청장도 하고, 이를 발판으로 일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역임한다. 이명박 정부 내내 출세가도를 달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잊고 지낸 김정배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초대 문화재청장 변영섭은 고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임 기간 내내 반구대 암각화 문제로 세상 시끄럽게 만들다가 7개월 만인가에 해임됐다. 한데 그 변영섭이 느닷없이 김정배를 문화재위원으로 끌어들이는가 싶더니, 문화재위원장까지 하는 게 아닌가? 김정배가 위원장 되어 한 일은 없다. 반구대 문제에 두어 번 얼굴마담 역할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 나한테는 밉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데 더 기가 찬 것은 그러다가 그 무렵 김정배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된 것이다. 이 한중연은 내 나와바리라, 그의 재임이 초래할 한중연 앞날이 암흑으로 점철하지 않나 싶었다. 그 불길한 예견은 단 한 치 어긋남이 없었다. 재임 기간 내내 김정배는 연구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김정배는 임기 4년인가 3년인가 되는 한중연 원장 연임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이것이 좌절됐다. 좌절에 내가 힘을 보탰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재임시절 내내 나는 비판적이었다.
한데 더 미치고 팔짝 뛸 일은 이런 그가 다시금 국사편찬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하는 것이 아닌가? 운이 따르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는 법이다. 국편 위원장 재직시절 김정배는 역시나 트러블 메이커라,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를 확정하자(이 작업 자체에도 그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힘을 보탠 것은 맞다고 나는 본다), 그 총대를 매고는 그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적폐청산 작업에서 김정배는 그 복판에 위치하는 인물이라 해서 지금은 유배형을 받은 형국이다. 하지만, 이것으로써 김정배가 완전히 죽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는 등소평을 능가하는 오뚝이이매, 어느 시절 어떤 모습으로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단군조선 이래 역사학도로 이만큼 혁혁한 승리를 구가하며 권력 정점이 선 인물은 없다. 중국사에 견준다면, 그와 비견할 인물은 오직 현대 중국 출범 이래 죽을 때까지 줄곧 권좌를 지킨 곽말약이 있을 뿐이다.
그의 젊은 시절을 이제는 노년에 이른 한 제자는 이렇게 기억한다.
"눈싸움 하던 우리한테 몸 녹이라고 용돈도 주시고, 이병도 중심 고대사관 타파에 앞장 서시고, 한국고대사가 실험용 모르모트냐는 비난 속에서도 인류학의 국가형성론을 도입 적용하시던 유연하신 선생님"
그런 김정배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