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 곧 낙랑 대방이 어디메쯤 있었느냐 하는 논란은 언제나 나로서는 체증과 같아 좀체로 해결 기미를 찾지 못한다.
이 논란이 이른바 재야와 강단사학을 가르는 가장 주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간단히 말해 재야 쪽은 요서 요동에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고, 강단 쪽은 평양 황해도 일대에 있었다고 보며 서로를 공격하는 재미로 산다.
이 논란과 관련해 나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말을 했으며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딱 이거다.
낙랑 대방 위치 문제 관건은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 의한 이른바 한 군현 축출이라, 이것도 솔까 삼국사기 등등 이런 사실을 전하는 기록은 하나 같이 낙랑을 미천왕이 공격했다 했지, 그래서 축출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한 방 건드려 봤다 딱 이게 역사에 남은 흔적이다.
이걸 이른바 정통 강단학계에서는 낙랑 한반도 축출로 침소봉대해 이렇게 한반도에서 쫓겨난 낙랑과 대방이 어느 날 신기하게도 지금의 요서 혹은 요동에 출현하게 된다고 한다.
이걸 교치僑置라 하는데, 교치란 간단히 말해 A라는 행정구역 혹은 지명이 그 본래 땅을 탈출해 B라는 지역에 뿅하고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이 교치라는 요물이 실제 중국사를 보면, 위진남북조시대에 몇 군데 나타난다. 특히 사마씨 서진西晉 정권이 황화 유역을 상실하고는 장강 유역 남경으로 천도하면서, 본래 황하 유역에 있던 지명들을 가져와 장강 유역에다 심기도 한다.
한데 그 내역을 뜯어보면 모조리 지명 변경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옮겨갔다는 그 지역 이름을 바꾼 데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교치설이라는 요망한 요술방망이를 저 낙랑 대방에도 그대로 적용해 313년 미천왕한테 얻어터진 낙랑 대방이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비행기타고 날아가서 딴 데 가서 예수님처럼 부활했으니, 그 자리가 요서 혹은 요동 일대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낙랑 대방 교치설이다.
그렇게 해서 교치했다는 낙랑 대방이 나타나는 증상을 보면 현재 그 옮겨갔다는 위치를 대강이나마 명확히 특정할 수 있는 시대가 북연이다.
이 북연北燕은 존속 기간이 아주 짧아 서기 407~436년이고 무엇보다 다른 오호십육국시대 왕조와는 달리 그것이 영유한 지역은 그런대로 아주 명확히 그 바운더리를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것도 정확히 그 바운더리냐를 따지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대략은 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 동쪽 경계지점이 중요한데 이는 거의 확실해서, 그 동쪽에 고구려가 버틴 까닭이라, 북연은 저 요하를 넘을 수는 없었다.
한데 보다시피 이 북연 정권 아래서 낙랑 대방은 물론이고 더 놀랍게도 요동遼東·현도玄菟까지 있다. 이 외에도 저 지도에서 드러나듯이 요서군도 있다.
한반도 중북부와 그 북쪽 훗날 고구려가 들어서는 지역에 설치됐다는 한 군현들이 모조리 요하 서쪽 지점에 몰려 있는 이 현상을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이것들이 다 모조리 비행기 타고 저쪽으로 날아갔단 말인가?
이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교치 단 하나의 키워드로 해명한단 말인가?
나는 그 담대함이 경이스럽기만 하다.
이것이 역사학이야?
한국사에 교치설을 주물한 이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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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치설僑置說 그 난무 문제는 차치하고, 중국사에서나, 그것도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하는 이른바 교치설僑置說, 곧 땅 덩어리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기가 느닷없이 한국사에 등장해 유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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