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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구글어스로 탐험하는 개성 만월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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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월대는 고려 왕궁 혹은 왕성이라, 요새야 구글로 앉아서 그 양태를 점검하는 시대라. 
 
앞서 평양 안학궁을 구글어스로 탐험했듯이 오늘은 같은 운전대를 잡고서 이 만월대를 점검하고자 한다. 
 

만월대를 복판에 넣고 보는 한반도 중서부 지방
동해안 쪽에서 본 전면.
임진강을 합류한 한강이 서해로 흘러드는 입구, 예성강을 끼고 험준한 산악이 막아선 분지에 자리잡음을 본다.

 
이를 보면 왜 하필 저쪽을 도읍으로 골랐는지 대강 짐작은 한다. 

방어에 무엇보다 신경썼음을 본다. 
 

 
이를 보면 송악산이 뒤로 병풍처럼 막아선 모습을 본다.

예성강 벽란도로 나가는 지점에도 언덕이 있다. 
 

 
 
이 왕궁 혹은 궁성 역시 동아시아 보편 그랜드디자인을 따라 남북 장축이며,  그 중심 남북축을 따라 그 중심 혹은 양쪽으로 주요 건물들을 배치했음을 본다. 
 
만월대라 표시한 지점이 남대문이라, 경복궁으로 치면 광화문에 해당하는 데라, 저곳이 아마 위봉루 라고 자주 보이는 그 남대문일 것이다. 저기서 왕이 자주 나타나 각종 쇼를 했다. 
 

 
방향을 좀 달리해서 서쪽에서 조망해 봤다.

만월대 뒤에 큰 마당이 있고 그 뒤에 직사각형 가장 큰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정전이라,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 창덕궁으로 보면 인정전에 해당한다. 

저기서 각종 장중한 국가 의식을 치렀다. 

일상 사무는 어디에서? 그 뒤쪽 군불 때는 데서 했다. 
 

 
이 남대문 뒤 정전과의 사이에 큰 운동장이 보인다. 저기서는 각종 국가 이벤트를 했다. 

의종 때인가는 궁궐 안에다가 축구장인 격구장을 만들었다 하는데 저쪽에서 했을 가능성도 있다. 

위봉루 앞쪽, 그러니깐 경복궁으로 치면 월대라고 복원한 지점에도 본래 큰 광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격구를 하고 스님들 불러다가 밥을 먹이기도 했다.

후자를 반승飯僧이라 하는데 한번에 참여 승려 규모가 만명 내기 3만명에 달했다.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이렇다. 

저 짝 발굴을 옛날 남북관계가 좀 좋을 때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했다. 

뭐 저걸로 한창 울궈 먹더니 남북관계 경색된 지금은 입도 뻥긋 안한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단체가 남북역사교류를 독점하게 한 이상한 협정이 있는데 그건 폐기해야 한다. 
 

 
 
만월대가 외부 세계로 통하는 창구가 벽란도다. 이 벽란도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다만 예성강 하구임은 분명하다. 

저쪽으로 상선들이 드나들고, 또 무엇보다 조운이라 해서 전국 각지에서 징발한 곡물과 같은 공납품이 모이는 곳이었다. 

만월대에서 벽란도로 향하는 옛날 도로는 내가 그렇게 재구성하려 했는데, 아직 속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개성 유람기를 깡그리 읽으면서 재구하려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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