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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국가유산기본법 생각 4 – 과연 유형과 무형은 나뉘어야 하는가? by Eugene Jo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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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협약 내에 문화유산 등재조항 중 6번째 조항은 우리를 상당히 헷갈리게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형적 가치가 깃든 유산이면 다 해당될 것 같이 쓰여 있다.

“탁월한 보편적 의의를 가진 사건 또는 살아 있는 전통, 사상 또는 신조, 예술적‧문학적 작품과 직접적 또는 가시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조항을 읽을 때 주로 명사에 집중을 해서 전통, 사상, 사건, 작품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하회마을을 등재한다고 쳤을 때 하회마을을 소재로 삼고 있는 그림이나 하회탈춤 같은 예술작품이 있으니 6번 조항이 해당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기반으로 이 조항을 인정받은 적이 없다. 다른 등재 조항과는 달리 6번 조항은 두 단계로 쪼개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예 없는건 아니고 우리나라 유산 중 제향의례 덕에 조선왕릉이 6번을 인정받았다.)

사건, 살아있는 전통, 사상, 신조, 예술작품, 문학 작품이라고 했을 때 아무 사건이나 다 되는 것이 아니고 탁월한 보편적 의의를 가진 사건, 전통, 사항, 신조, 작품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그 사건이나 작품 자체가 탁월한 보편적 의의가 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하회마을을 그린 그림이 많기 때문에 하회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될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마을을 그린 그 작품 자체가 전세계인이 모두 공감할 만한 탁월함이 있다고 증명해야 한다.

만약 동학농민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장소를 등재하고 싶으면 동학농민운동이 우리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라고 증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사적으로, 국제적으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사건이라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1단계.

그러나 이 조항의 핵심은 바로 그 다음 2단계이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사건이나 작품을 수식하는 부분인 “직접적, 가시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는 이 부분이다.

즉, 뭔가 사상이나 사건이나 작품이 이미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쳤을 때 그 가치와 내가 지금 등재하려는 장소가 직접적, 가시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하회마을 예로 돌아가 하회탈춤이라는 신분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진 예술작품 자체가 탁월한 보편적 의의가 있다고 증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는 그렇다면 하회마을의 유형적 입지, 가옥, 마을 체계가 어떻게 하회탈춤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하회탈춤과 연계된 가치를 가진 하회마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다윈의 생가를 들 수 있다. 종의 기원을 집필하여 진화론이라는 보편적 학문적 성과를 다윈이 이룩하였기에 다윈이 살며 연구실로 삼았던 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는 신청서가 등재조항 6번을 걸고 제출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탈락했다.

이때 다윈의 학문적 성과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인정이 됐다. 그러나 등재 대상인 다윈의 생가가 그 학문적 성과와 어떠한 직접적, 가시적 연관관계가 있는지 증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종의 기원이라는 학문적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장소는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다니면서 생물종이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는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에 남긴 갈라파고스 제도 일대라고 여길 수 있지, 그가 생활을 했던 생가가 이러한 성과와는 직접적으로 연계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례를 보면 해당 사건이나 작품이 등재하고자 하는 장소나 건축물과 직접적, 가시적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로시마가 왜 6번 조항으로 등재되었는가?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라는 탁월한 보편적 사건이 있고, 그 원자폭탄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은 도시라는 2단계 연결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6번 조항이 어렵고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무형유산이랑은 그닥 관계가 없다.

이렇게 무형적 속성을 인정하기 어렵게 디자인된 세계유산협약으로는 다양한 무형문화재를 품기는 어려워서 무형유산협약이 새롭게 만들어져 채택되고 발효되었다.

그래서 우리 역시도 문화재보호법 한쪽을 점유한 무형문화재를 별도의 법으로 독립시켜 별도로 운영하는게 당연하게 느껴졌고 결국 그렇게 발전해왔다.

여기에서 아쉬운 건 우리가 오히려 파격적으로 유형과 무형을 한꺼번에 묶어 보존하는 법체계를 마련하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만들어갔으면 어떨까 하는 점이다.

앞선 글에서 말했지만 유산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문구가 바로 가치 기술문이다. 이때의 문화재적 가치는 이유, 즉 why를 설명하는 글이다.

우리가 이 문화재를 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 가치는 모두 무형이다.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이유라는 것이다. 조선왕릉이 왜 중요하다고 여기는지, 소쇄원이 왜 중요하다고 여기는지, 그것이 조선시대의 장묘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기획된 정원 디자인을 보여주기 때문에라는 등의 “이유”는 그 자체로서 무형이다. 우리 머리 속에서 존재하고 부여한 개념이다.

그래서 문화재에 깃든 모든 가치는 무형적이다. 단지 그 가치가 어떤 식으로 보여지는지, 그 속성이 유형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무형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유형유산이니 무형유산이니 하는 종류가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와 자연의 경계를 자로 잰듯 가르기가 어렵듯이 유형과 무형 역시 명확하게 잘라내기 어렵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사진)이 무형유산이지만, 제주라는 지역적 공간 안에서, 굿에 필요한 각종 제기, 물품, 악기, 의복 등의 유형적 기물들을 가지고 특정한 무형적 행위를 수행하므로 유형과 무형적 속성이 모두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무형적 속성의 비중이 클 뿐이다.

세계유산은 아니지만 경복궁은 어떠한가. 건축물이자 궁궐으로서 유형적 속성이 다대한 유산이지만 건축물을 배치한 계획법, 전통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대목 기술, 건축기법 등은 모두 무형적인 유산의 일부이다.

그러니 지금도 숭례문을 재건할 때 단청 기술을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가지고 많은 논란이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서 숭례문을 무조건 유형유산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 무형적인 단청 도안, 채색법, 안료 제조법, 부재 다듬는 기술, 석재 가공방법, 현판에 쓰여진 서체 등등 무형적 속성을 가진 요소들도 정말 많다.

그러니 하나의 유산 안에는 무형적 속성과 유형적 속성이 언제나 같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무형유산을 보호하고 지원해온 정책을 펼쳐온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유형과 무형을 좀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말이 너무 길어져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은 국립무형유산원 기록화 사진에서 찾았는데 굿상에 파인애플이랑 바나나가 올라가는게 맘에 들어서 퍼왔다.

칠머리당 영등굿의 저 사진 한컷에서 이 유산의 유형적 속성은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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