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군역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호적

by 신동훈 識 2026. 6. 23.
반응형

기생들하고 골패 골몰하는 저 사람은 누굴까? 기산 김준근 풍속화 중 하나.

 

우리나라 호적은 결국 군역 때문에 유지된 것이다. 

물론 그 외 다양한 용도가 있었겠지만, 

결국 호적에 표시된 신분의 상당 부분이 군역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요즘 주민등록에서 병역 여부를 기록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호적의 전통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호적이라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볼 수 있으니, 

군역을 담당할 계층이 뒤로 갈수록 노비로 빠져 나가버린다는데 심각성이 있었다 하겠다. 

따라서 평민층이 줄고 노비층이 늘어가니 군역을 담당할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율곡이 지적한 바 "경장을 해야 할 병폐"는 틀림없이 이를 가리킨 것이니, 

양반들은 조선시대 내내 군역을 담당할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로 서얼과 중인층 등

양반도 아닌 놈들이 양반을 모칭해서 빠지는 통에 군역자가 없다고 이들을 조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조선사회에 군역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18세기까지만 해도 양반모칭자 때문이 아니라

양반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중농주의 실학자들이 균전제 한전제를 주장하며 토지 균분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군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완전히 뜬금없는 이야기로, 

사실 조선사회의 군역자 감소 문제는 노비의 수를 줄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정작 이 방법을 양반들 스스로 입에 담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소위 말하는 중농주의 실학자라는 이들의 개혁안이라는 것은 공상적이라는 차원을 넘어

매우 위선적이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18세기까지 상황이었지만, 

19세기가 되자 이번에는 아예 군역을 회피하는 합법적 신분이었던 양반 직역이 본격적으로 공격받기 시작했으니, 

이전까지 군역을 담당하던 평민들이 노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되려 양반 직역을 모칭하고 나선 것이 되겠다. 

조선사회는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