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가들의 이야기 중에 한국은 금속활자를 세계최초로 개발하고 사용했지만
왜 구텐베르크와 같은 인쇄술 혁명은 일으키지 못했는가 하는 논의가 있다.
한국 금속활자 인쇄술은 누가 뭐래도 세계최초의 기술로, 한국문명이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유산임은 분명하지만,
기능적으로 본다면 인쇄술보다는 오늘날의 복사기에 훨씬 가깝다고 본다.
복사기가 소수인원을 대상으로 소량의 인쇄물을 제작해 같이 볼 목적으로 존재했다면,
한국의 금속활자의 기능은 딱 오늘날의 복사기-제록스 머신에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금속활자란 오늘날로 말한다면 관공서에 설치된 복사기였던 셈인데
이것으로 소수 인원이 같이 볼 수 있는 숫자의 부수만 제작했고 이보다 더 많은 부수가 필요하다면 목판으로 복각했으니 딱 오늘날 복사기와 같은 역할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량 인쇄하여 배포할 만큼 종이나 먹 등 재료가 넉넉치 않았고 독자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금속활자가 소량 다품종 인쇄물을 찍어내는 복사기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과거 대학가에서 새로 수입된 논문 등을 세미나 등에서 검토할 때 그 논문을 복사하여 제본한 다음 같이 보곤 하였으니 (지금은 PDF파일이 보급되어 양상이 달라졌다)
조선시대에 희귀한 도서가 입수되어 이를 배포할 때 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찍었으니 (목판으로 하기에는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되는 사람이 읽을지도 알수 없으니)
정확히 오늘날 복사기 그 기능에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쇄기 대신 복사기의 기능에 더 가까왔다고 해서 금속활자의 세계사적 의미가 낮아지는 것은 물론 아니겠다.
필자는 20세기 복사기의 세계사적 의미도 인쇄 못지 않게 크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이 되면 이전과 달리 복사기, 개인용 프린터 등으로 소량 다품종 인쇄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거대한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는데
이 역시 과거 구텐베르그 이후 대량 인쇄로 말미암아 일어난 세계사적 변화 못지 않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는 바로 그러한 소량 다품종 인쇄의 기원이 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는데
굳이 한국의 인쇄술을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에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비교가 이루어지는 한 어째서 한국의 인쇄술은 유럽과 달리 실패했는가라는 결론에만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금속활자는 20세기 후반 복사기-개인용프린터 기능에 미루어 설명하는 편이 요즘말로 "훨씬 힙한" 설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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