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북한과 조선왕조: 군역

by 초야잠필 2022. 8. 20.
반응형

5군영 중 하나인 수어청이 있던 남한산성. 나라 살림이 넉넉했다면 아마 5군영은 완전한 병농분리에 기반한 직업군이 되었겠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다.

여러모로 북한은 조선왕조시대와 닮은 점이 많은 사회이다. 

오늘자 뉴스를 보니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GDP의 15-25프로에 달한다고 한다.  나라 살림이 넉넉치 못한데 거대한 군사조직을 운영하다 보니 나오는 현상이라 할수 있겠는데 북한의 발전은 이러한 정치적-군사적 상황의 변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386820?rc=N&ntype=RANKING 

 

北, GDP의 15% 이상 군사비로 지출…규모는 韓의 4분의1 안돼

美, 세계 군사비·무기거래 보고서 공개…北 병력수 세계 4위 한국, 2019년 군사비 세계 10위…최근 11년간 무기 수입 4위 김병수 특파원 = 북한은 지난 2019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5% 이상을 군사비

n.news.naver.com

조선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가 그 시대는 문약한 사회로 군사적 측면에는 등한시 했다는 생각인데 국조보감 등 조선시대의 통사를 하나만 숙독해도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필자가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조선시대는 국방에 대한 관심을 한번도 소홀히 한 때가 없었다.

조선시대는 국방에 소홀히 한 결과 무력이 약해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 했던 것이 아니라 왕조의 생산력 자체가 주변 국가에 비해 낙후된 결과 군사력도 덩달아 시원치 않게된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오히려 없는 살림에도 필사적으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눈물겨운 쥐어짜기를 감행한 역사가 조선시대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17세기 중엽, 5군영의 하나인 훈련도감 군사 5천명을 유지하는데만 당시 호조재정의 1/3을 소모했다고 하며, 예전에 국조보감을 봤던 필자의 기억으로는 조선후기 어느 시기에는 전체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이 국방비였다는 내용도 읽었던 것 같다. 우리 생각보다는 조선시대 당시 국방비가 국가재정에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며 이러한 사실을 보면 임진왜란때 다 타버린 경복궁 하나를 어째서 대원군때까지도 중건 못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 할 만하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5666

 

양역(良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선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용례부터 본다면 이미 태종 때부터 찾아지지만 16세기까지만 해도 군역(軍役)·국역(國役)·신역(身役) 등의 표현이 보다 일반적이었고, 양역의 용어는 17세기 이후에

encykorea.aks.ac.kr

조선후기에도 일본 등 주변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병농분리가 이루어지지 못한것은 군역에 대한 당시 이데올로기가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병농분리를 통해 직업군을 양성하려 해도 국가 재정이 이를 따르지 못한 측면이 더 강해 보인다. 5군영이 다 합치면 총 병력 3만명 내외라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도 이 정도의 병력도 당시 유지하려면 국가재정의 절반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 조선후기의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임란 이후 한국의 상황은 만성적 재정 결핍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보아도 될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직업군에 전통적 군역을 적당히 뒤 섞어 놓은 하이브리드 군대가 필요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정규군 외에 군대도 아니고 군대가 아닌것도 아닌 수십 수백만명의 예비군을 유지하는 전통은 남북한 모두 그 연원을 상고하면 조선시대까지 (아니면 훨씬 이전 시대까지도) 이른다고도 할 수 있겠다. 21세기 한반도 예비군은 엄밀히 말하면 남북분단의 산물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유습인 측면도 있는 셈이다. 

https://youtu.be/5rbLBIaaaI0

북한의 예비군 동영상이라고 한다. 군대도 아니고 군대가 아닌것도 아니다. 조선시대의 군역도 비슷했을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