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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김기림 '새나라송頌'

1945. 8. 15



文대통령 인용한 '한 시인의 노래'는 김기림 '새나라송'

송고시간 | 2019-08-15 11:21

광복절 경축사가 불러낸 납북시인, 모더니즘 기수서 참여문학 선봉으로



새나라송頌


김기림(金起林(1908~ ?)



거리로 마을로 산으로 골짜구니로 

이어가는 전선은 새 나라의 신경 

이름 없는 나루 외따른 동리일망정 

빠진 곳 하나 없이 기름과 피 

골고루 돌아 다사론 땅이 되라 


어린 기사들 어서 자라나 

굴뚝마다 우리들의 검은 꽃묶음 

연기를 올리자 

김빠진 공장마다 동력을 보내서 

그대와 나 온 백성이 새 나라 키워 가자 


산신과 살기와 염병이 함께 사는 비석이 흔한 마을에 모―터와 

전기를 보내서 

산신을 쫓고 마마를 몰아내자 

기름 친 기계로 운명과 농장을 휘몰아 갈 

희망과 자신과 힘을 보내자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 


녹슬은 궤도에 우리들의 기관차 달리자 

전쟁에 해어진 화차와 트럭에 

벽돌을 싣자 세멘을 올리자 

애매한 지배와 굴욕이 좀먹던 부락과 나루에 

내 나라 굳은 터 다져 가자


김기림 

1908(1세) 5월 11일(음력 4월 12일), 함북 학성군 학중면 임명동 276번지에서 아버지 선산 김씨 병연(丙淵)과 어머니 단천 이씨 사이에서 6녀 끝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학자인 백부 김병문이 한시 어느 구절에 나오는 글을 인용해서 기림起林이란 이름과 석촌(石村)이란 호도 지어주다. 

1914(7세) 어머니 단천 이씨가 임명동에서 사망, 그뒤 계모를 맞이하다. 

1915(8세) 4월, 함북 학성군(성진군)에 있는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1917(10세) 보통학교 졸업 후 한학자를 모셔다 약 3년간 한문과 글씨를 배우다.  

1921(14세)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입학, 중퇴하고 도일度日하여 입교중학(立敎中學)에 편입. 

1926(19세) 입교중학 졸업 후 일본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 입학. 

1930(23세) 일본대학 졸업 후 귀국,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1931(24세)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란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에 전념 

1932(25세) 1월, 평산(平山) 申氏와 결혼하다. 후에 김원자(金圓子)로 개명하다. 

               12월, 장남 세환 출생. 

1936(29세) 동북제대東北帝大 영문학과 입학. 장녀 세순 출생. 7월, 첫시집 『기상도』 장문사에서 간행. 

1939(32세) 동북제대 졸업하고 서울로 돌아와 조선일보사 기자로 다시 근무. 장남 세환의 국민학교 입학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서울 종로구 충신동으로 옮겨오다. 9월에 두 번째 시집 『태양의 풍속』 학예사 간행. 

1940(33세) 서울 종로구 이화동 196번지로 이사. 차녀 세라 출생. 아버지 병연 임명동에서 사망. 

               8월, 조선일보 폐간으로 낙향. 

1942(35세) 함북 경성중학교 교사 부임,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 제자로 시인 김규동과 영화감독 신상옥. 

1945(38세) 8.15광복과 함께 경성중학교 교사직을 사임하고 다시 상경. 이 무렵(1945~1950)에 서울대 사범대, 중앙대, 연희대 등의 전임교수와 동국대, 국학대 및 그 밖의 시내 대학 출강. 

1946(39세) 4월, 세 번째 시집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간행. 

              12월, 『문학개론』 신문화연구소 간행. 3남 세훈 임명동에서 출생. 봄에 부인이 세훈과 함께 상경. 온 가족이 모이게 되어 이화동 자택으로 옮기다. 11월, 시론집 『시론』 백양당 간행. 

1948(41세) 4월, 네 번째 시집 『새노래』 아문각 간행. 6월, 역서 『과학개론』 을유문화사 간행. 

1950(43세) 2월, 시론집 『학원과 정치』(유진호·최호진·이건호·김기림 공저)가 수도문화사에서 간행. 

               4월, 시 연구서 『시의 이해』가 유문화사에서 간행. 

               4월, 『문장론신강』 민중서관 간행. 

               6·25동란이 일어나자 한강철교가 끊어져 피난하지 못하다가 동숭동 로타리에서 제자로 보이는 청년 두 사람에 의해 지프차에 실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납북. 막내 누나 이야기에 의하면 6·25동란이 끝난 후 부산에서 같이 수감된 수필가 조경희씨를 만나 동생 소식을 듣고 노상에서 둘이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1988. 3. 27 납북 판명 공식 해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