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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김춘추의 여인들(1) 김유신이 기획한 막장드라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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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金春秋는 신라 제29대 임금으로, 진평왕 25년(603)에 태어나, 진덕여왕이 재위 8년 만인 654년 봄 3월에 돌아가자 신하들 추대로 왕위에 올라, 8년을 다스리다가 661년 음력 6월에 돌아가니, 향년 59세였다.

4년 만에 폐위된 진지왕 손자이면서, 아버지는 생부生父가 이찬伊飡 용수龍樹이며, 양부養父가 이찬 용춘龍春이라,

어머니는 진평왕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다.

천명은 진평과 마야부인摩耶夫人 소생이라, 선덕은 그의 동부동모同父同母 동생이다. 
 
그의 비는 문명文明이라 하거니와, 실제 태종무열왕으로서의 정비正妃는 시종일관해서 오직 문명이 있을 뿐이다.

문명이 누구인가? 아버지는 각찬角飡 혹은 각간角干을 역임한 김서현金舒玄이며, 어머니는 진평왕 어머니요, 동륜태자비인 만호태후의 사녀私女인 만명공주萬明公主다.

만호는 어머니가 진흥왕모인 지소태후요, 아버지는 2대 풍월주를 역임한 이화랑이다. 
 
김춘추가 어찌하여 김유신 가문과 혼맥으로 연결되었는지는 익히 알려진 것이니, 이는 김유신의 계략에 의함이거니와, 그것을 재삼 거론하지는 않으려 한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 확인할 점은 김춘추의 출생시기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본기 말년 조에 "왕이 훙薨하니 시호를 무열武烈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내고 묘호廟號를 올려 태종太宗이라 했다"고만 할 뿐, 향년을 밝히지 아니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이와는 달라 기이 편紀異篇이 집록한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이야기에서는 "진덕왕眞德王이 죽자 영휘永徽 5년 갑인(甲寅·654)에 춘추공이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8년 만인 용삭龍朔 원년元年 신유(辛酉·661)에 훙薨하니 나이 59세였다. 애공사哀公寺 동쪽에 장사지내고 비석을 세웠다"고 했다.

그의 출생연도를 각종 자료가 603년, 진평왕 25년으로 못 박은 근거가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 
 
김춘추의 여자들을 궁구함에 그 자신의 출생 시점만이 아니라, 그의 장자로 그가 죽자 왕위를 계승한 문무왕 김법민金法民의 출생시기도 고려해야 하니,

왜냐하면 현재까지 알려진 거의 유일한 정부인 문희가 김춘추와 정식 결혼하기 전에 불륜의 밤을 보내면서 싱글맘으로 낳은 아이가 바로 김법민인 까닭이다. 
 
유감스럽게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김법민의 향년이 없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문무왕이 죽은 직후 신라 조정에서 그 공을 기려 건립한 '신라 문무왕릉비新羅文武大王陵碑'가 비록 파편 형태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에서 그의 향년이 56세라 보이는 까닭이다. 
 
이 비편 뒷면에는 그의 죽음을 이르기를 "▨宮前寢時年五十六"이라 했으니, 이는 그가 무슨 궁 앞에 있는 침전에서 돌아가시니, 이때 56세셨다"는 뜻이거니와,

바로 이에서 거구로 만 55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출생은 626년이다.

각종 인명사전에서 그의 출생 시점을 이렇게 밝히는 근거가 바로 이 비문 구절이다. 
 
김법민 탄생 시기가 왜 중요한가 하면 이를 통해 우리는 서라벌을 뒤흔든 김춘추-김문희 스캔들 발생 시점을 추산하는 까닭이다.

김유신이 고안한 이 계략에 김춘추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휘말려들었다.

그 결실이 싱글맘이었고, 김문희 임신 사실이 발각되면서, 김유신의 애비 없는 아를 밴 여동생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희대의 장작불 쇼를 감행한 때가 바로 626년, 혹은 아무리 늦어도 625년임을 우리는 해명한다. 
 
말한다.

김유신이 김춘추를 꼬드겨, 내 동생이랑 알콩달콩 해봐 라며 끌어들인 때가 진평왕眞平王 47년 혹은 48년이었다.

47년, 다시 말해 625년을 시점으로 보면, 595년생인 김유신은 서른한 살이었고, 그의 동생으로 599년생인 김흠순은 26살, 603년생인 김춘추는 스물세살이었다.

김문희는 출생시점을 알 수는 없지만, 김유신-김흠순에게는 동생임이 확실하고, 더구나 언니 보희가 있었으므로, 추산컨대 김춘추와 거의 같은 나이 아니었거나, 몇살 어린 십대 후반이 아니었나 한다.

나는 문희의 당돌한 행태를 보건대 아마 낭랑 18세 어간이었다고 본다. 
 
이미 장년에 이르러, 노회함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유신이 주연·조연·감독까지 하면서 20대 초반 애송이들을 동원한 희대의 아침 막장 드라마가 마침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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