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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껍데기만 벗긴 흥륜사 영묘사 흔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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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조사 상태. 껍데기만 벗겨낸 수준이다.

 
경주 흥륜사 경내 영묘사지 발굴은 애초 시작 자체가 사전 계획에 따라 진행된 현장이라기보다는 작년 배수로 건설 과정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고려시대 불교 공양구 발견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힘을 써서 진짜로 영묘사과 관련한 유적이 어떤 상태로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데서 시작했다고 안다.

그렇게 해서 이래저래 융통한 예산이 4억2천 만원. 출처는 당연히 국가유산청이다.

조사단은 서라벌문화유산연구원으로 선정됐으니

오늘자 국가유산청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이 발굴을 어느 기관에서 했는지가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 국가기관 고질인데, 지들이 돈 댔다고 오로지 자기네 업적으로만 부각하려 한다.

어디 그게 지들 돈인가? 국민 돈이지?

각설하고 국가유산청장 응천 최씨도 현장을 탐방하고 갔다 하며, 나아가 금당 터가 출현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껍데기 벗겨낸 데 지나지 않아 저 아래 무엇이 더 있는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이대로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마 이래저래 더 융통해서 추가 조사를 하리라고 본다. 

조사단에서는 이곳이 신라 얼굴무늬수막새가 나온 곳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그 유사한 유물을 찾지 않겠느냐 하며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기와 무지를 뒤지는 모양인데,

찾으면야 이른바 대박을 치겠지만, 유물이 기대한 대로 나와준다면 그게 고고학이겠는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조사는 진행되었는가?

간단히 껍데기만 홀라당 벗긴 데 지나지 않는다. 껍

데기 벗겨서 나오는 데야 뻔해서 조선시대 아니면 고려문화층이라, 실제로도 그러하다. 

문제는 저 아래 신라시대 영묘사가 들어앉아 있다는 사실. 

바로 앞 사진은 조사단이 트렌치를 겸해서 더 파고 내려가 본 지점인데 삼국시대 적심으로 추정하는 흔적으로 현재 지름은 2m, 전체 지름은 2.5m 이상으로 조사단은 추정한단다. 

신라 문화층인 셈이다. 
 

 
이건 금당 2차 시기 차양칸 앞 지대석이라 조사단이 추정하는 트렌치.

아래층 기와 더미가 보이는데 조사단은 그 형성시점을 기와 분석을 근거로 대략 670년~800년 무렵으로 추정한다. 

저 장대석 주변에서는 12세기 순청자가 극소수 확인되기도 했다.

발굴 지점 유의할 점이 물이 많이 나오는 땅이라는 사실이다. 이건 그럴 수밖에 없다.

서쪽?으로 형산강이 흘러가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경주분지는 지대가 낮아서 홍수 피해가 극심하다. 

영묘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에다가 툭하면 화재를 만난다. 화재가 날 때마다 그 위에다가 새로 건물을 지었으니, 그때마다 지대가 높아짐은 당연한 일. 

금당터 주변에서 그보다 1m 이상 낮은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건물터 흔적이 확인됐다는데 결국 제대로 조사를 해야 어느 정도 신라시대 영묘사 면모가 드러난다 하겠다. 

금당이 단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드러난다는데, 건물 품격을 높이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물이 나는 지점이라는 현지 사정 또한 막대하게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당시 하상이 어떤지도 봐야 한다.

이는 결국 형상강을 비롯한 강을 일정구간씩 째서 보는 수밖에 없을 텐데, 이건 또 다른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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