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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과 선인善人은 다르다]
말할 나위도 없는 이 두 마디는 곧장 혼동되곤 하니, 이에서 무수한 알력과 갈등이 발생한다.
내가 친한 사람이라 해서 그가 선인은 아니다.
반대로 그가 선인이라 해서 나와 반드시 절친은 아니다.
함에도 이것이 혼용해서 착란을 유발하니,
어떤 이가 내 절친 A를 비판 비난한다 해서 내가 그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실상은 딴판이라 그로 인해 무수한 적을 양산한다.
이건 일상에서 너무 흔히 부닥치는 문제다.
내가 그 사람과 절친인 것과 그 사람이 선인인 것은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다.
내가 보건대 간신 혹은 특권은 이 둘을 혼동한 데서 비롯한다.
박근혜를 존경한다는 우병우는 나를 알아준 박근혜와 정치인 지도자로서의 박근혜를 혼동한 대표적인 보기다.
(2016. 12. 31)
***
저것이 어떠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지는 지금으로선 추가 설명이 필요없다.
다만 혹 저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친구들이 없지는 않을 듯하므로 간술하면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으로 가는 와중에 발생한 그 청와대 측근 우병우를 들고 나온 것이니 둘 다 저 사건으로 감옥에 갔으니
그 수괴 박근혜는 간밤에 특사로 출소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저 이야기는 생명을 다하기는커녕 반복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끼리끼리 뭉쳐 우리는 오로지 정의요 저들은 악의 굴레라는 이 정신은 조선시대 사색당파를 자양으로 삼는다.
간신은 그리 탄생한다.
저들은 말한다.
우리가 남이가?
나는 말한다.
그래 남이요 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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