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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나는 김유신인가?"

by Herodopedia taeshik.kim 2019. 9. 21.



백제를 멸한 신라가 곧이어 당과 연합해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이때 역할 분담이 이뤄졌으니, 실제 군사공격은 당군이 감당하고, 신라군은 군량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이 보급부대 총사령관이 김유신이었다. 


이 보급대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자세치 않다. 다만, 당시 정세를 볼 적에 지금의 서울 정도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한다. 옮길 군량은 쌀 4천 섬에 조租 2만 2천2백5십 섬이었다. 보통 이처럼 막대한 군량은 산이 많은 한반도 사정상 육상 수송보다는 해상 수송을 선택해야했겠지만, 이게 여의치 아니했는지 육상을 뚫었다. 


파주 임진강 라인을 도하한 듯한데, 암튼 고구려 국경에 진입한 신라군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겨울이라 눈이 섞인 바람이 쳤으니, 오죽하겠는가? 적군이 저항하는 데다, 날씨 지형 그 어느 것도 도와주지 아니하니 전진이 막히고 더뎌지거나 하자, 이미 67세, 칠순을 앞에둔 뇐네 김유신이 웃통을 벗어제꼈다. 


이런 사정을 평양성을 공략하는 당군에 알려야했다. 현재 우리 사정은 이러하며, 언제쯤 군량미를 댈 수 있을 것 같다는 등등의 사정을 알려야했다. 그렇다면, 누굴 보낼 것인가? 몇명을 보낼 것인가? 


김유신이 이 특공대로 나설 자들을 응모했다. 


"누가 가겠는가?" 


물론 약속도 있었다. "이 임무를 잘 성공해도, 설혹 적진에 들어가서 죽어도 전공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요즘 군대 계급으로 치면 대위? 혹은 소령? 정도에 있는 둘이 "제가 가겠습니다"고 나타났다. 한 사람은 이름을 렬기裂起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구근仇近이라 했다. 렬기는 당시 직책이 확인되거니와 보기감步騎監이었다. 글자 그대로는 보기步騎를 감독[監]하는 장교였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렬기裂起 열전 한 토목이다. 


문무왕 원년(661) 당 황제가 소정방을 보내 고구려를 토벌해 평양성을 포위하자 함자도(含資道) 총관 유덕민(劉德敏)이 국왕에게 소식을 전하며 평양에 군량을 보내주도록 하니 왕이 대각간 김유신에게 명해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2백5십 섬을 운반토록 하니 장새(獐塞)에 이르러 바람과 눈이 몹시 차가워 사람과 말이 많이 얼어 죽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군사들이 피곤함을 알고 요로에서 막아 공격하려 했다. 당 군영과는 거리가 3만여 보(步) 떨어져 있었는데 더 전진할 수 없어 편지를 보내고자 했으나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때 렬기는 보기감(步騎監)으로 행군에 참여하고 있다가 앞에 나서며 말하기를 “저는 비록 우둔하고 느리지만 파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고 해서 드디어 군사 구근(仇近) 등 15인에 끼어 활과 큰 칼을 가지고 말을 달리니 고구려 사람들이 바라다 볼 뿐 막을 수 없었다. 거의 이틀을 달려 소(蘇) 장군에게 명을 전하니 당인들이 듣고서 기뻐하며 위로했다. 답서를 보내기에 렬기가 다시 이틀을 걸려 되돌아왔다. 유신이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급찬級飡의 관위를 주었다. 군사가 돌아오자 유신이 왕에게 고하기를 “렬기와 구근은 천하의 용사입니다. 신이 우선 급찬의 위계를 주었는데 그 공로에 비하면 미흡합니다. 바라건대 사찬沙飡의 위계를 가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사찬의 지위는 지나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유신이 두 번 절을 하고 말하기를 “벼슬은 공기(公器)이며 공에 보답해 주는 것이니 어찌 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허락했다. 


이로 볼때 렬기가 보기감 출전 당시 관위官位는 10위 대나마大奈麻였음을 알 수 있다. 구근에 대한 기록은 미비하나, 그 역시 대나마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특공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2계급이나 특진했다. 


승진 경로를 보면 우선 전장터에서 총사령관 김유신이 직권으로 9위 급찬으로 올려주었다가, 나중에 귀국해서 김유신의 요청으로 문무왕이 한 등급 다시 오른 8위 사찬으로 올려주었음을 안다. 


그렇다면 김유신이 렬기와 구근 관위를 높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장수는 국경을 벗어나면 군주의 명령도 듣지 아니한다. 현장에서 오로지 그 자신의 독단獨斷으로 사태에 대처한다. 때로는 직권으로 인사권을 행사했으니, 그렇다고는 하나, 이런 일은 자칫 군주의 권위를 훼손한다 해서 실제로는 장수가 행사를 하지 아니하고, 나중에 귀국해서 왕한테 아뢰는 형식을 빌려 하기 마련이다. 


한데 이 점에서도 김유신은 역시 남달라서, 그 자리에서 직권으로 관위를 높여준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귀국 뒤 김유신의 행보다. 한 등급으로 부족하다 생각해서 왕을 알현하고는 "하나 더 올려주십시오!"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한 문무왕 반응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데 "하나 올려줬음 됐지, 또 한 등급이요? 남들이 뭐라 할텐데요? 대장군 좀 봐주소. 다른 친구들이 보잖소?"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김유신은 그 여파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왕의 말이 틀린 데가 하나도 없었다. 한데 김유신은 역시 노회했다.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의 체면을 한껏 살려주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했으니, 그런 왕의 말에 곧장 절을 두 번 했다는 사실이다. 그 정경 그려지는가? 


칠순을 앞둔 백전백승의 명장이 관모를 벗고는 두번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이런 김유신을 열기와 구군 같은 수하들은 어떻게 했겠는가? 그야말로 장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 같이 버렸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리는 법이다. 하물며 자기를 알아주는 데서 더 나아가 직급까지 파격적으로 두 단계를 승진시켜주는데 무엇인들 바치지 못하겠는가?


어제오늘 계속 이 김유신이 머리 가슴을 맴돈다. 


나는 내 부원들을 위해 저리할 수 있는가? 이를 물으니, 돌아오는 것이라곤 "나는 김유신이 못된다"는 자탄뿐이다. 



*** 이 열기-구근 특공대는 영화 소재로 딱이다. 내 주변에 드라마 영화작가가 더러 포진하는데 참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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