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발굴사업 시행처인 전남 나주시 19일자 보도자료라,
이르기를 이곳 다시면에 소재하는 잠애산성이라는 옛 성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후삼국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건물터 10개 동 이상을 확인했다 한다.
후삼국시대라, 후삼국시대 나주는 소속이 아주 묘해서, 신라가 이미 중앙에서 지방 통제력을 상실한 시기에 애초에는 견훤에 속했다가 왕건한테 털려서 고려에 의한 후삼국 통일에 이르기까지 내내 태봉, 곧 훗날 고려 왕조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후삼국시대라 하지만, 어느 정치체가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추정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무튼 후삼국시대 어간이 맞다면, 이번 발굴을 반길 데는 나주 현지보다는 외려 후백제 현창 사업을 벌이는 전주 쪽에서 반색할 소식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나주시는 이 ‘잠애산성’에서 후삼국시기 조성했다고 추정하는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과 건물터가 출현했으니, 이는 "후삼국시대 나주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왕건과 견훤의 서남해 해상권 쟁탈전, 당시 호족과의 관계 실마리를 풀어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학계 기대를 모은다:"고 자평했다.
이 잠애산성은 다시면 회진리에 위치한 복암리고분(사적 제404호)과 정촌고분 배후에 위치한 산성山城이다.
2024년 국가유산청 역사문화권 중요 발굴 유적 조사 일환으로 지난 7개월 간 (재)새론문화유산연구원과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연구원은 나로서는 처음 듣는 조사기관인데 문화유산청 자료를 보면 2022년 11월 2일 설립허가가 유산청에서 나고 대표는 신연식이라 한다.
암튼 이번 조사 결과 산성 안쪽 구역 중에서도 동쪽에 평탄한 지역이 있는 모양이라 그곳을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한 듯, 나말여초(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시기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10동 이상 건물지와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인 축대 등을 다수 확인했다 한다.
앞서 말한 그런 복잡한 정치 상황 전개 과정에서 영산강과 인접한 이곳 이번 발굴성과는 "역동적인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앞선 조사에서는 ‘개경원대장표명’(開慶院大匠瞟明), ‘관’(官)자명 등 다양한 명문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이는 해당 건물들이 관청 용도로 사용됐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긴 산상을 개인이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국가나 요즘 개념으로 지자체에서 직영했을 것이니 이런 결과는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이와 같은 명문 기와는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잠애산성 인근 복암리 유적 10차 발굴조사 구역에서 출토된 바 있어 두 유적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엿보인다.
다만 이번 발굴성과를 전하면서 나주시는 관련 사진 1장만 첨부해서 그 구체적인 양상을 들여다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저 사진을 보면 축대가 특히 장난이 아니다. 도대체 뭘까?
느낌은 산성이라는 특성상 딱 군창軍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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