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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남대문 불타기 직전 이란 동굴의 추억

by taeshik.kim 202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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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잘 놀다가 촬영만 하면 촬영모드로 들어가기는 한국이나 이란이나 마찬가지다. 저 친구 이한용 관장 전언 듣자니 길란지역 문화재조사연구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단다. 



2008년 2월 한양대 문화재연구소가 기획한 이란 페르시아문명 답사 과정에서 들른 이란 북부 길란지방 어느 험산 중턱 동굴유적을 찾아가는 길이며, 그에서 실제로 유물을 수습한 장면이다.


순전히 연출이다. 충배는 동굴에 들어갔다가 뱀 안 만난 게 다행이다. 


오늘 그 답사반을 이끈 작은대장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이 이에 대한 포스팅을 했으므로, 그것을 보완하고자 이들 사진을 꺼내어 정리한다.
이중 몇 장은 이미 간헐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충배 들여보내고 망 보는 신희권



길란지방 고고학도 2명이 안내를 해서 이 답사반 기뤠기 일원들인 나와 경향 이기환, 서울 서동철이 이 답사반 큰대장 배기동 교수 수하인 심광주 당시 토지박물관 부장, 그리고 역시 한양대 동문인 김충배 현 LH 차장,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재직 중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를 휴대하고서 현장을 찾았다.


충배가 동굴에서 수습해 나온 호저 가시와 골각기던가? 암튼 그랬다. 



당시 답사반은 중장년 중심이었거니와, 수십 명에 달하는 일군은 카스피해 구경한다고 다른 방면으로 갔으니, 개중에는 나선화 현 문화재청장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저 노랭이...이런 덴 뇐네는 딜꼬 가는 게 아니다. 



험준한 산길을 올라 동굴이 있는 곳으로 찾아떠났으니, 그 와중에 서동철은 본인 말에 의하면 생명의 위협을 감지해 지 혼자 살겠다고 중도 탈락했으며, 나머지가 동굴을 찾아 내려갔다.


동굴 가는 길은 급경사다. 



이 동굴로 가는 길은 염소나 양이 닦아놓은 길이 나 있었으니, 이 길을 따라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고, 다시 평행에 가까운 암벽 길을 따라 가니 동굴이 있었다. 이 동굴 속으로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으니 배얌이라도 있으면 좃된다는 두려움이었다.


뇐네 고생하는 거 좋대는 이한용



그래서 우리가 작당을 하여, 지표 조사에서는 한국고고학을 대표할 만한 거물인 김충배 군을 떠밀어 넣었다. 들어간지 십여분만에 호저 가시 한 점과 토기 쪼가리 두어점을 수습해 나왔으니, 역시 김충배다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 날이 2008년 2월8일...


염소와 양이 만든 길을 따라 걸었다. 



답사반은 이튿날 테헤란 국제공항을 통해 인천공항인가 김포공항으로 입국했으니, 벵기에서 내려 핸펀을 켜는 순간 수십 통에 달하는 전화가 불이 났는지라, 우선 마누라한테 전화를 걸어 귀국 신고를 했더니, 남대문이 홀라당 불탔다 해서 첨엔 남대문 시장이 또 불이 났다 했다.


동굴로 가는 길. 앞쪽 두 마리가 희권이랑 충배다. 

 

신희권 이기환 이한용(왼쪽부터)

 

차에서 내려 동굴로 가는 길. 맨 앞이 광주 같고 그 왼편이 서동철



그 길로 나는 트렁크 질질 끌고는 수송동 회사로 출근해 졸라리 남대문 방화 화재 기사를 썼다.


그 험한 산악 비포장길로 우리를 실어나른 차는 현대차였다. 


(2016. 7. 5)

 

 

***

 

이런 데는 영디기를 데려가야 했지만, 당시 영디기는 꼬바리 조사원으로 빌빌 기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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