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10)
내가 뇌염에 걸렸다는 보도를 접하고 장난삼아 짓다[報載患腦炎戱作]
[現代] 루쉰(魯迅, 1881~1936) / 김영문 選譯評
치뜬 눈길로 어떻게
고운 눈길 빼앗겠나
그런데 뜻밖에도
여인들 마음 어겼다니
나에 대한 저주를
이젠 수법 달리해도
여전히 얼음 같은
나의 머리만 못하리라
橫眉豈奪蛾眉冶, 不料仍違衆女心. 詛呪而今翻異樣, 無如臣惱故如氷.
루쉰
1934년 중국 톈진(天津) 『대공보(大公報)』 「문화정보(文化情報)」 코너에 루쉰이 심한 뇌염에 걸려 10년 동안 두뇌활동을 할 수 없다는 가짜뉴스가 실렸다. 당시 중국에도 얼토당토않은 가짜뉴스가 횡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루쉰은 당시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베이징에 계신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에 그는 베이징 미명사(未名社) 동인인 제자 타이징눙(臺靜農)에게 이 시와 함께 안부 편지를 부쳐주면서 자신은 아무 탈 없이 잘 있다고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해주게 했다.
아주 짧은 칠언절구이지만 시인이 설정한 시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다지 어려운 설정은 아니다. 이 시에서 루쉰은 스스로를 분노에 차서 눈을 치켜 뜬 신하로, 그리고 자신을 헐뜯고 무고하며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자들을 임금에게 아부나 일삼는 궁녀로 비유하고 있다.
첫째 구는 늘 미간을 찌푸리고 성난 모습으로 사는 자신이 어떻게 눈썹을 곱게 단장한 어여쁜 궁녀들의 은총을 임금에게서 빼앗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매우 희화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이다.
둘째 구는 그런데도 어여쁜 궁녀(아첨꾼)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즉 험악한 눈길을 가진 자신이 어떻게 어여쁜 궁녀들의 마음을 어겼겠냐는 의미다. 반어적 어투다.
루쉰
셋째 구는 저들이 나를 저주하는 방법을 바꿔 내가 뇌염에 걸렸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어감을 담고 있다.
넷째 구에서는 자신이 뇌염에 걸렸다는 가짜뉴스가 나갔지만 자신의 머리는 오히려 잔머리 굴리는 자들보다 얼음같이 차갑고 맑음을 강조하고 있다.
루쉰의 한시에는 이처럼 전통과 근대의 자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면에서 루쉰의 구체 한시는 불협화음의 표지가 아니라 전통과 근대의 착종을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루쉰 문학의 진정한 좌표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역사적 중간물로 자처한 루쉰 정신의 자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학 코드라 할 수도 있다.(『루쉰, 시를 쓰다』, 역락, 2010, 해당 시와 「옮긴이의 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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