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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살구꽃비에 옷깃은 촉촉히 젖어들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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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


절구(絶句) 


[宋] 승지남(僧志南) / 김영문 選譯評 


늙은 나무 그늘 속에

다북쑥 싹 짧게 돋아


지팡이에 몸 기대고

다리 동쪽으로 건너가네


살구꽃비에 내 옷이

촉촉하게 젖어드는데


얼굴 스치는 버들 바람도

차갑지 않구나


古木陰中系短篷, 杖藜扶我過橋東. 沾衣欲濕杏花雨, 吹面不寒楊柳風. 


연합DB


절기가 청명에 이르면서 꽃샘추위도 한 풀 꺾였다. 얼굴에 스쳐오는 바람에 훈기(薰氣)가 느껴진다. 완연한 봄바람이다. 그 봄바람에 ‘행화우(杏花雨)’ 즉 ‘살구꽃비’가 쏟아진다. 가랑비나 보슬비에만 옷이 젖는 것이 아니다. 살구꽃비에도 봄옷이 촉촉하게 젖는다. 옷을 적시는 물질은 습기가 아니라 향기다. 그러므로 향기로 옷을 적시는 비는 세우(細雨)나 미우(微雨)가 아니라 향우(香雨)다. ‘살구꽃비(杏花雨)’는 ‘향기 나는 비(香雨)’다.


게다가 향기로운 비를 뿌리는 바람은 버드나무(楊柳)를 스쳐왔다. 그 바람의 색깔은 버드나무 새순에서 묻어온 옥빛이다. 옥빛 바람이 분홍빛 살구꽃 비를 흩날리고 그 꽃비는 내 옷을 촉촉하게 꽃향기로 적신다. 무지개 같은 봄날이다. 노약한 몸을 이끌고 다리 건너 동풍이 불어오는 곳으로 나간 사람도 바로 회춘의 기운에 심신이 소생하는 희열을 느꼈으리라.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닌 꽃비가 쏟아지는 고목 아래다. 


연합DB



뿐만 아니다. 그 고목 아래엔 봄의 소생을 상징하는 나물인 다북쑥 새싹이 가득 돋아났다. 다북쑥도 살구꽃 향기에 젖는다. 쑥국, 쑥버무리, 쑥떡 등등 봄 향기 가득한 봄 음식에는 꽃향기까지 스며 있다. 이제 바야흐로 꽃비에 옷이 젖는 시절이다. 화사한 꽃구름이 분분히 꽃비로 쏟아질 터이다.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작년 어제 4월 4일자에 이 시가 ‘한시, 계절의 노래’ 첫 번째 시로 떴다. 딱 1년 전에 이 연재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24절기 중 청명절을 맞아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나의 황폐한 페이스북에 한시의 시를 뿌리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사진도 없고 해설도 없이 시만 올리기 시작했다. 무슨 큰 계획도 없이 평소에 스산한 마음을 달래려고 읽던 한시를 계절에 맞게 올리려 마음먹었다. 페이스북에 올리던 여러 가지 컨텐츠가 바닥이 나서 한시로 대체하려던 의도도 있었다. 하루 1시간 정도 심심풀이로 끄적거렸으므로 시간상으로 큰 부담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황무지에 뿌린 한시의 씨앗이 독자 여러분의 돌봄과 북돋움에 힘입어 311회라는 큰 나무로 자랐다. 이제 한시만 게재된 초기 포스팅에 틈틈이 사진과 해설을 붙이고자 한다. 물론 계절에 맞는 새로운 시도 계속 소개할 것이다.


*** 작자 승지남(僧志南)은 남송시대 승려이자 시인으로, 지남이 법호法號이며,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시집에 주희(朱熹, 1130~1200)가 발문을 써 주었으니, 주희 시대 사람이라 보면 대과가 없겠다. 僧은 그가 승려이면서 석가모니를 따르는 제자임을 표시하기 위해 성姓처럼 쓴 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승지남이란 지남이라는 이름을 쓰는 불교 승려라는 뜻이다. 출가하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 하지만, 어디 이게 말처럼 쉬운가? 그런 까닭에 승려들 역시 법호라는 불교식 이름을 새로 받지만 성이 필요해, 이럴 때 僧이라는 글자를 성처럼 썼으니, 僧 말고도 석가모니 표식인 釋을 쓰기도 했으니, 그리하여 승지남 또한 석지남釋志南이라 쓰기도 한다. 志南은 남쪽을 동경하다는 뜻인 바,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한 법호인지는 내가 알 수는 없다.(台植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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