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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대왕묘大王墓 vs. 소왕묘小王墓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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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소왕릉.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익산 쌍릉雙陵은 글자 그대로 두 개 봉분으로 구성되거니와, 이 둘을 구분해 상대적 크기에 따라 봉분이 더 큰 곳을 대왕묘大王墓 라 하고, 작은 쪽을 소왕묘小王墓 라 한다. 


이 쌍릉이 작년 대왕릉에 이어 올해 소왕릉까지 재발굴을 했다. 재발굴인 까닭에, 더구나 고려시대에 이미 대대적인 도굴 피해를 밨으며, 식민지시대에 발굴이 있었던 까닭에 이렇다 할 유의미한 발굴성과를 내기는 힘들었다. 


다만, 식민지시대에 이곳을 발굴한 야쓰이 세이이치라는 친구 주특기가 파제끼고 보고서는 나 몰라라 팽개주의라, 그 유감없는 특성을 이곳 쌍릉에 대해서도 그대로 실현했으니, 조사는 했는데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친구가 남긴 다른 유산 중에 이 두 봉분을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별하기 시작한 것도 있는 것으로 알거니와, 암튼 예서 중요한 것은 쌍릉이면 쌍릉이지, 그것을 굳이 둘로 쪼개서 하나는 대왕릉, 다른 하나는 소왕릉이라고 구별해 부르기 시작한 때가 식민지시대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른바 소왕릉 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혹 내 조사가 철저치 않을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 어느 기록을 봐도 이 두 무덤은 쌍릉이라고만 했지, 그것을 구별해 저런 식으로 부르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쌍릉이라는 말 때문이다. 쌍릉이란 twin tomb라는 뜻이니, 그 자체에 봉분이 두 개라는 뜻을 내재한 까닭이다. 


한데 더욱 큰 문제는 대왕릉 소왕릉을 지금도 그리 부른다는 사실이니, 내가 오늘은 그 부당성을 논하려 한다. 


왜 대왕릉 소왕릉이 부당하다 주장하는가? 



이른바 소왕릉 석실 내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내가 언젠가 대목장 소목장 문제를 다룬 적이 있거니와, 애초 이 말은 대목大木을 다루는 장인, 소목小木을 다루는 장인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쓴 것이지, 결코 큰 장인, 작은 장인이 아니라고 했거니와, 그럼에도 말도 아니되는 명명법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대목장을 큰 나무 전문가, 소목장을 그에 딸린 시다 나무 전문가로 통용한다는 부당성을 논했다. 


마찬가지로 대왕릉과 소왕릉은 대왕의 무덤과 소왕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백제시대에 대왕이 있고 소왕이 있다는 곡해로 발전할 우려가 크다. 이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다. 



쌍릉의 이른바 대왕릉과 소왕릉



물론 저리 명명한 놈은 저것이 상대적으로 큰 무덤이라 해서 대/왕릉, 작은 무덤이라 해서 소/왕릉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리 받아들이는 건 이렇게 쓴 놈 뿐이다. 실제는 대왕/능, 소왕/능으로 통용하는 것이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유독 저리 문제투성이인 명명법을 따른단 말인가? 


소왕릉 대왕릉이라는 명칭은 버려야 한다. 지워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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