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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도봉서원 영국사 유물이 남긴 것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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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오늘(8. 21) 문화재청이 국립고궁박물관서 도봉서원터 발굴조사 과정에서 쏟아진 영국사 관련 유무들을 국립고궁박물관서 공개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조광조 배향 도봉서원은 본래 영국사라는 고려시대 이래 불교사찰이 있던 자리라

율곡 시대에 그 자리에다가 도봉서원을 짓게 된다.

서원을 지을 적에 저 청동기물이 있는줄을 몰랐다.

알았으면 저 돈덩이를 가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이게 다 돈이다.

조선시대 청동은 희귀해서 금덩이였다.

실제 숙수사라는 절 자리에다 소수서원을 지으면서 주세붕은 저런 청동기물을 발견하고선

이게 웬 떡이나 해서 서울 가서 싹 팔아서 서적 샀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하다 찾았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뒷말이 있었다.

이것도 느닷없이 막판에 발견되는 바람에 뒤늦게 언론에 공개됐다.

이 이야기는 훗날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유물은 도봉서원터 귀속논쟁을 촉발했다.

조계종이 가만 있지 않고 또 우리꺼다 나섰으니 이게 언뜻 보면 말이 안되는 듯 해도 다 이유가 있다.

훗날 추가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결국 그 조사를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라는 발굴단에서 먹어버렸다.

또 하나 저들 유물은 국고 귀속이라 어디로 가져가느냐가 문제였으니 옛날 같음 국립중앙박물관이 쏙 가져갔지만 이젠 잘 안준다.

서울서 나왔으니 서울로 관리권 위탁한다.

서울시 공립으로 가져갈 만한 데는 두 군데, 서울역사박물관과 한성백제박물관 두 군데다.

이걸 나와바리를 갈라 고려시대 이전은 후자. 조선시대 이후는 전자 이리 신사협정, 따라서 저건 강남 백제로 갔다.

한데 변수가 생겼다.

수정이가 가만 놔둘리 만무했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생기자 달라졌다.

한성백제서 전시할 공간 혹은 주제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수정이가 설득했다.

우리 주라.

그래서 장기 대여형식으로 빌려다 상설코너 마련해 전시 중이다.

다만 공예 특성상 제대접은 받기 힘든 그런 느낌이 있어 고려공예 코너 좀 확실히 꾸며 대대적으로 개비했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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