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제32화를 끝으로 막을 내린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이야기 전개나 CG처리와 같은 드라마 제작술 측면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있을 수 있고, 나 또한 그에 불만이 적지는 않지만, 역사성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여러 모로 생각할 점을 많이 던졌다고 생각하거니와
위선 내 기억에 고려거란전쟁 자체를 소재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다는 점에서 소재 개척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성 싶다.
이 분야 연구가 아무리 축적되었다 해도 그 수많은 글이 저와 같은 드라마나 영화 1편이 던지는 파급과 맞먹을 수는 없다.
그만큼 영상물이 지닌 파괴력은 여타 출판물을 능가한다는 점에서 이번 드라마는 그것을 대중에 각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그 이름이 너무나 유명하고, 그것이 대표하는 귀주대첩이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실감할 수 없던 강감찬이라는 인물과 어쩌면 드라마가 아니었던들 철저히 매몰되고 말았을 고려 현종을 수면 위로 부상한 점은 이 드라마가 낳은 최고 성과라 할 만하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이른바 양규 앓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양규라는 인물을 필두로 강조니 김훈이니 최질이며, 강민첨이며 하는 일반에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을 법한 무수한 역사상 인물을 저 심연에서 불러냈으니, 이제 우리는 각주나 주석없이 저런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시대를 맞았다 해도 좋다.
나는 또한 이 드라마가 시종하고 일관해서 위대한 고려, 위대한 한민족 역사를 빛내는 조연 혹은 희생으로 소환하기는 했지마는 거란을 불러냈다는 점을 높게 치고자 한다.
물론 이 드라마는 거란을 한민족 제단에 바쳤으나, 이런 일이 아니고서는 언제 거란을 불러낸단 말인가?
물론 거란이 호명된 적은 없지는 않으니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어떤 드라마에서 설인귀라 해서 이덕화가 분장한 인물이 등장하는 맥락에서 거란이 잠깐 논급되기는 했지만, 거란이 이만큼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대중물이 있었기나 했던가 말이다.
내 욕심 같아서는 누구를 칭송하기 위해 희생한 악의 축이 아니라, 고려와 동등한 자격 요건을 구비한 거란상을 제시했으면 싶었지만, 현실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한계는 이해하기로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비록 야율륭서 성종과 소배압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제 우리는 새로운 거란보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평하고 싶다.
이 거란을 불러낸 점이야말로 나는 이 드라마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과로 본다.
나아가 나름 이른바 고증이라는 측면에서 이 드라마 제작진이 무진 노력을 기울인 점도 일정부분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록의 공백을 매우려 하면서 밑도끝도 없는 왕권과 호족정권과의 대립이라는 시대에 덜떨어진 이기백 사학을 불러내는가 하면 기타 적지 않은 비약과 왜곡 논란을 빚기도 했지마는, 이건 이것대로 따로 짜지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전반으로 보아 정중부 이전 고려에 막부정권이 있었음을 확실히 각인했고, 나아가 거란 습속과 관련해서도 무시 못할 측면들을 요사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려 한 점은 상찬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국뽕주의는 또 경계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어찌 고려가 훗날 천년 뒤 대한민국을 위한 내셔널리즘을 고취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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