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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라오스] 화전민 현지조사를 꿈꾸며

by taeshik.kim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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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갔을 때다. 이한용 김충배 다 동행한 그때 테흐란 북쪽 길란고원 동굴유적을 찾아갔는데, 그때 해발 2천미터 고지를 오르락거리며 그 산촌을 보면서 이런 데는 장기간 현지조사라는 걸 해 봤으면 하는 꿈을 잠시간이라마 꾸기도 했다. 

라오스를 처음 간 때다. 루앙프라방 근처 산촌 마을을 갔다. 무슨 소수민족인지 이름을 까먹었다.

하도 외지인들을 많이 접하는 바람에 이른바 외부세계 오염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오염되지 않은 마을은 실은 인류학도 민속지학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하며 사는 까닭이다. 

암튼 그때 그쪽을 오가며, 또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을 오가며 내려다본 마을, 특히 산촌 곳곳이 화전민 연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서, 아 저쪽에 가서는 화전민 조사를 해 봐야겠다는 그런 꿈도 꾸기도 했더랬다. 

다시 10년 만에 밟은 라오스는 화전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더욱 강화하는 중이라, 조금 있으면 화전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곳곳에는 화전 흔적이 남았으며, 지금도 화전하는 모습을 간간이 봤다. 

한국에서 화전은 사라졌다. 박정희 시대 그 청산 일환으로 그 강원도 지역 화전민 상당수가 인천 방향으로 거주를 옮기고 현지에는 화전을 경험한 세대가 지금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하나둘씩 스러져 간다. 

이 화전민 증언채록을 낙성대경제연구소가 했다. 이 연구소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 증언채록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공간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불굴하는 연구조사를 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라오스를 보면서 화전민 조사를 통해 그네들이 불은 언제쯤 싸지르며, 그 싸지른 땅은 어떤 방식으로 개간하며, 그 개간한 땅은 무슨 곡물을 뿌리며, 그렇게 수확한 곡물은 어찌 처리하는지, 그것을 둘러싼 사회 체제는 어떠한지 등등은 관광객 모드로 잠깐 가서 채취하는 증언으로는 택도 없으니, 그런 조사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꿈틀대기는 한다. 

나는 우리 고고학도 민족지학도가 이런 현지조사를 너도나도 하는 날을 기대한다.

방학이 되었다 해서 답사를 빙자한 논문거리 하나 찾겠다며 탱자탱자 놀러다니며 밤이면 술 퍼마시고, 박물관에서 사진 몇 개 찍어 이것이 해상실크로드네 하는 그런 장난은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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