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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청동기시대의 비단 옷

by 응도당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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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전통시대에 양잠과 비단 옷 짜는 기술을 비밀에 붙였다고 한다.

대륙에 통일왕조가 등장한 이후에는 줄곧 그런 경향이 있었던 모양으로 [대당서역기]에는 그 장면이 이리 적혀있다.

"호탄 사람들은 뽕과 누에를 원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호탄왕은 중국에 혼인을 청했고 신부에게 뽕과 누에를 가져와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신부는 남몰래 뽕과 누에 종자를 구하여 자신의 왕관에 숨겨 호탄에 가져왔다."

비단이 가지고 있는 고급 직물로서의 선입견, 그리고 중국이 주변에 전파를 원하지 않았다는 위와 같은 기록 덕인지 한반도의 경우 양잠과 비단의 생산이 매우 늦다.. 는 선입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북쪽으로는 부여로부터 고구려, 삼한, 심지어는 왜에 이르기까지 당시에도 양잠을 안하는 곳이 없었다.

왜의 경우는 아직 말도 소도 없던 나라이지만 이런 곳도 양잠은 하고 있었다.

"其衣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髮屈 ,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其地無牛馬虎豹羊鵲." (삼국지 위지 왜전)

현재 한반도 남부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양잠관련 유물은 다호리에서 나온 명주실끈이라고 한다. 기원전 유물이니 이 시기에는 확실히 양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을 알수 있다.



다호리에서 나온 명주실끈. 기원전에 한반도 남부는 이미 양잠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 거대제국이 출현하여 비단직조기술을 통제하기 이전에 이미 양잠과 비단 제작기술은 한반도를 거쳐 왜에 까지 전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언제 양잠은 한반도로 들어왔을까? 후술하겠지만 필자는 그 시기를 의외로 이른 시기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아마도 수도작과 함께 흘러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보는데, 만약 이러한 추정이 맞다면 청동기시대에도 이미 한반도에는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던 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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