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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마왕퇴와 그 이웃-21] 팽륭상彭隆祥 (1)

by 신동훈 識 2025.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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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왕퇴 발견 50주년 학술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팽륭상彭隆祥

 
필자가 지금까지 마왕퇴 발굴 과정 중 중국은 문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주로 난장판에 대해서만 적어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당시 마왕퇴 연구 조사 과정이 엉터리였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이 당시 마왕퇴 연구와 조사 과정에 참여한 고고학자와 의학자들은

당시의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금보아도 대단한 수준의 연구를 남겼다. 

고고학 쪽은 스토리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 자세히 적지 않는다. 
 


 
아마 필요하다면 김단장께서 다루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한 인물을 따로 적어두고자 한다. 

미라 연구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팽륭상彭隆祥이라는 인물이다. 

마왕퇴 미라 조사 과정에서 Peng Long-Xiang이라는 인물이 항상 등장하는데 

그 양반이 이 사람이다. 

그는 마왕퇴 발굴 당시 호남의과대학 병리학 조교수였다고 한다. 

원래는 병리학이 아니라 해부학을 했던 모양으로 그가 의대를 졸업한 당시에는 호남의대가 상아의대였던 시절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당시 상아의대는 남중국일대에서는 최고수준의 의대로 

원래 서양선교사가 세운 의과대학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국공내전당시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아마 청소년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투철한 공산당원이었는지,

아니면 의학에 매진하던 의학도였는지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마왕퇴 발굴 조사 과정에서 갑자기 전면에 등장하는데 

주은래 총리의 지시로 마왕퇴의 보존 및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전국의 의학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게 되었는데

아직 일개 조교수에 불과한 그가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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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사진이 1972년 12월 14일, 호남의학원Hunan Provincial Medical Institute 외과 의사들이 여전히 피부가 촉촉한 신추 유해를 부검하는 장면이다.

구체로는 시술 전 소독하는 모습을 포착한 장면이다.

이에는 Cao Meihong 박사와 Peng Longxiang 박사가 참여했다.

신추 부인 관을 열었을 때 빠르게 갈색으로 변한 반투명 액체가 관을 채우고 있었다.

저 시신을 조사한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손에 발진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앞 사진은 2003년, 중난대학교 샹야 의과대학Xiang Ya Medical School of Zhong Nan University 전문가가 신추 부인을 부인을 새로운 진열장으로 옮기기 전에 검사하는 모습이다.

수년에 걸쳐 그녀의 온전한 정맥에는 "비밀" 방부제 용액이 반복적으로 주입되었다. (후난성 박물관 제공)
 
아래 인터뷰가 있다. 
 
https://www.bilibili.com/video/av31111235/

马王堆女尸解剖主刀人彭隆祥教授对湘雅学子的寄语_哔哩哔哩_bilib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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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력이 바이두에 아주 간단히 보인다. 
 
彭隆祥

中南大学湘雅医学院教授
彭隆祥,男,毕业于湖南医学院,现任中南大学湘雅医学院教授,马王堆女尸解剖主刀人。
中文名彭隆祥
国籍中国
毕业院校湖南医学院
职称 教授
1956年从湖南医学院毕业后,彭隆祥留在学校组织学教研组,1958年调到了病理学教研组。1972年12月14日参与解剖马王堆女尸,解剖古尸后,彭隆祥逐渐组织病理学的研究方向调整为古病理学研究。此后,国际上凡有比较重要的古病理学学术会议,彭隆祥都想方设法参加,推介中国西汉古尸研究的丰硕成果。 [1]
 
펑룽샹

중남대학 샹야 의과대학 교수
남성, 후난 의과대학 졸업, 현재 중남대학교 샹야 의과대학 교수, 마왕두이 여성 시체 부검 집도인.
중국명 펑룽샹
국적 중국
출신 대학 호남 의과대학
직함 교수.
1956년 후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펑룽샹은 학교에 남아 교육 연구팀을 조직하였고, 1958년에는 병리학 교육 연구팀으로 전임되었다. 1972년 12월 14일 마왕퇴 여성 시신 해부에 참여한 후, 펑룽샹은 점차 조직병리학 연구 방향을 고병리학 연구로 조정했다. 이후 국제적으로 중요한 고병리학 학술회의가 있을 때마다 펑룽샹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참가하여 중국 서한 고대 시체 연구의 풍성한 성과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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