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재 전국에 걸쳐 100곳 이상을 헤아리는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을 그 등장 초창기에는 매장문화재연구원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으니, 1994년 8월 5일, 그 시초를 알리며 출범한 기관 역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었다. 이 연구원은 결국 1999년 9월 9일, 이름을 영남문화재연구원으로 바꾸는데, 가장 중요한 차이라면 '매장'이라는 말을 뺀 것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 홈피 캡처. 문화유산은 우리의 미래자산이다는 구호...글쎄, 그 명실이 상부하는지 아닌지는 나는 모르겠다.
이 매장을 애초 '埋葬'이라 했는지, 혹은 '埋藏'이라 했는지 자신은 없지만, 그네들이 표방한 목적을 본다면 아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매장'이라는 말이 사회에 통용하는 가치다. 고고학계를 벗어난 데서는 모두가 전자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시체를 묻는 일을 하는 곳이라 인식하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자체가 그 모델을 일본에서 가져온 까닭이라, 대규모 개발에 따른 광범위한 발굴조사 업무를 국가기관이 독점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것을 민간의 영역에서 일정 부분을 떠맡겠다고 해서, 일부 고고학 관련 고고학 종사 대학교수가 주동이 되어 민법상 비영리법인 형식으로 이런 문화재전문조사기관 시대가 출범하는 문을 연 것이다.
그네들이 주로 조사대상으로 삼는 문화재가 땅 속에 '매장'된 까닭에, 일본 흉내를 내어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을 표방했던 것인 바, 그래서 영남문화재연구원도 초창기 이름이 저랬던 것이다.
공주 수촌리 백제고분 발굴현장. 발굴 절대 다수가 무덤을 조사대상으로 삼는 까닭에 매장은 곧 시체라는 연상은 실은 고고학의 숙명과도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매장'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빼기 시작하더니 지금 이런 이름을 쓰는 데는 거의 없다.
아무튼 매장문화재연구원이란, 땅 속에 매장된 문화재를 연구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을 단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매장이라는 말을 빼버린 이유도 장의사협회 때문이었다. 장의사협회에서 협회 가입하라고 연락이 오는가 하면, 심지어 사람이 죽었으니 시체 실어가라는 연락이 오기도 한 시절도 있었다. 매장문화재조사기관이 일반에는 장의사로 통용된 것이다.
하긴 이 매장이나 저 매장이나 피장파장 똥끼나밑끼나였으니 할 말은 없다.
이 문화재 조사 정책 전반을 전담하는 정부부처가 문화재청이고, 더욱 구체로는 그 아래 문화재정책국 아래 발굴제도과라는 데서 이 업무를 총괄한다. 고고학 발굴만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각종 법률 전반까지 관장하는 부서라 해서 이리 이름한다.
한데 이 발굴제도과만 해도 명칭 변화가 적지 아니해서, 그 직전에는 '발굴조사과'였다. 그것이 관장하는 주된 업무를 기준으로 이리 명명했던 것인데, 하지만 이 역시 문제는 적지 아니했으니, 이 말을 보다시피 이 과가 직접 발굴조사를 벌이는 곳이라는 착시를 유발한다. 하지만 발굴조사과가 직접 발굴조사를 하는 일은 없다. 그에 수반하는 각종 인허가를 필두로 하는 행정 조치를 전담할 뿐이다. 그래서 이름을 저리 바꾼 것이다.
인천 계양산성 발굴현장
그렇다 해서 현재의 발굴제도과가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것이 관장하는 업무는 발굴이 주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실제 발굴 관련 업무는 그 절대비중이 크지는 않다. 그것이 표방하는 정신을 살린다면 발굴지원과 정도를 대안으로 생각해봄 직하다.
한데 이 발굴제도과도 발굴조사과 이전에는 또 이름이 달라, 그 전에는 매장문화재과였다. 이 매장문화재과가 2005년 8월 16일 간판을 내리고 발굴조사과로 갈아타게 되는데, 그런 명칭 변경에 앞서 말한 저와 같은 사정도 있었다. 아래 첨부하는 당시 내 기사는 그런 사정의 일단을 증언한다.
2005.08.11 15:21:56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가 '발굴조사과'로 된 까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청(청장 유홍준) 사적명승국 산하 '매장문화재과'가 문패를 바꿔 단다. 새 간판은 '발굴조사과'로 확정됐다.
이번 개편은 문화재청 직제 개편에 의한 것으로 16일자로 시행 예정이다.
한데 명칭 개편을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다.
연천 군담댐 수몰예정지 발굴현장.
조직개편 담당인 혁신인사관리관실 신용한 사무관은 "매장문화라고 하니, 일반인이 장례문화와 관련 있는 곳이라고 오해를 한다"면서 "이 참에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매장문화재란 글자 그대로는 땅 속에 매장된 문화재를 말한다. 하지만 매장이라고 하니 매장된 문화재를 관리한다는 본래 취지는 온데 간데 없고, 시신을 매장한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매장문화재와 관련되는 기관이나 연구소, 특히 고고학발굴 조사 전문기관이 90년대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거의 모두가 '매장' 혹은 '매장문화'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간판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단국대 부설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가장 먼저 생겨난 발굴조사전문기관인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은 가장 먼저 '매장'이란 간판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 이름은 '영남문화재연구원'이다. 다른 기관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왜 그랬을까?
나주 복암리고분 주변 발굴성과.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장례문화와 혼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기관이 문화재청과는 달리 영남문화재연원을 비롯한 발굴조사 전문기관들은 엉뚱한 전화문의에 시달리곤 했다. 사람이 죽었다면서 시체를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는가 하면, 심지어 그 지역 장의사협회 같은 곳에서 회원 가입을 하라는 독촉 전화까지 받는 일도 있었다.
이것이 졸지에 장의사가 되어 버린 고고학자들이 '매장(문화)'이란 단어를 멀리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며, 그런 여파가 급기야 매장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taeshik@yna.co.kr
(끝)
그건 그렇고, 한국문화재사에서는 민간법인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요새 벌어지는 한국고고학 사상 최대의 코미디 사건은 추후 다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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