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통문화연구회는 지난 2021년 1월 31일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대표적 평론서이자 과거시험의 필독서로 널리 읽힌 《동래박의東萊博議》를 총 5책으로 완간하였다.
- 최고의 역사평론서이자 과거 필독참고서 -
《동래박의》는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학자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 1137~1181)이 《춘추좌씨전》의 기사(記事)를 바탕으로 춘추 시대의 치란(治亂)과 득실(得失)을 논평한 《춘추좌씨전》의 대표적 평론서이다. 그래서 이 책을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 ‘동래선생좌씨박의(東萊先生左氏博議)’ 혹은 ‘좌씨박의(左氏博議)’로도 부른다. 또한 여조겸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儒生)들의 문장 수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후 《동래박의》는 과거를 치르는 유생들이 문장을 익히기 위한 필수교재로써 자리 잡았으며 조선(朝鮮)의 유생과 학자들도 널리 애독하였다.
- 《동래박의》, 총 5책으로 완간 -
(사)전통문화연구회는 지난 2012년 9월 30일 《역주 동래박의 1》의 발행을 시작으로 2021년 1월 31일에 《역주 동래박의 5》를 발행하여 총 5책으로 《동래박의》를 완간하였다. 원로 한학자 정태현(鄭太鉉) 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가 책임번역을 맡아 오랜 시간 역주를 진행하였다. 원문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현토(懸吐)를 하여 단락별로 번역문과 역주를 나란히 실었다. 또한 역주서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제(解題), 도판(圖版), 색인(索引) 및 여조겸의 전기(傳記)와 연보(年譜)를 함께 실었으며, 한국의 문집 속에 보이는 《동래박의》에 관한 다양한 논설들도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 과거시험 족집게 과외교사 송영구(宋英耈)와 그의 제자 주지번(朱之蕃) -
선조(宣祖) 시기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가 명나라의 주지번(朱之蕃)의 과거급제를 도와준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명나라로 사신을 갔던 송영구가 북경(北京)에 머무는 동안 숙소의 아궁이에서 불을 떼는 청년을 보았다. 송영구는 그 청년이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도 무언가 끊임없이 읊고 있는 것을 들었는데, 그것은 장자(莊子)의 《남화경(南華經)》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그 청년은 바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도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여 객사의 잡부로 지내고 있던 주지번(朱之蕃)이었다. 송영구는 주지번에게 조선의 과거시험에서 통용되는 모범답안의 작성요령을 알려주었고, 그 후 2년 뒤에 주지번은 송영구의 족집게 수업을 통해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데 있어 표준이 되는 문장을 익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당시 중국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은 명절 때나 휴가를 받아 돌아갈 때면 반드시 《동래박의》를 베껴서 갔기 때문에 돌아가는 자들의 짐을 열어보면 이 책이 없는 자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한문단편소설 <양반전(兩班傳)>에서 “언제나 오경(五更)이면 일어나 유황에 불을 돋우고 등잔을 켜고서 눈은 가만히 코끝을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얼음 위에 박 밀듯 《동래박의》를 왼다.”라고 한 말은, 《동래박의》가 조선에서도 과거 공부의 필독서였다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 논리와 문장 습득의 교범 -
《동래박의》가 《춘추좌씨전》의 대표적 평론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여조겸이 뛰어난 문장력으로 춘추시대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 예리하게 논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시험은 당대의 정책과 사회문제에 대하여 문장으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동래박의》에 실린 여조겸의 논리와 문장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에게 최적의 교재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문 문장을 익히고 역사인식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키우는 데에도 이 책이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 본문 속으로
애석하다! <임금에 대한> 원망은 생전에 있는 것이고 그리워함은 사후에 있는 것이다. 昭公이 당일의 원한을 <피하지 않고> 직접 당면하였음에도 훗날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함을 기대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는데도 아무도 구원해주는 이가 없었던 이유이다. 昭公이 시해 당하려 할 때에 방황하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원수 아닌 이가 없었으니 길이 막히고 事世가 극한에 이르러 스스로 함정으로 뛰어든 것이다. 아니면 민심은 본래 昭公을 잊은 적이 없으나 다만 그의 잔혹했던 일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그리워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가령 昭公이 분발하고 잘못을 깨우쳐 지난날의 행위를 고쳤다면 백성들은 장차 그에 대한 사후의 사념을 생전으로 옮겼을 것이니, 지난날의 <惡鳥인> 솔개와 올빼미는 모두 난새와 봉새 같은 <상서로운> 새가 되었을 것이고, 지난날의 독성 있는 칡뿌리는 모두 인삼과 삽주 같은 良藥이 되었을 것이며, 지난날의 목을 치는 形具는 모두 안석처럼 편안히 몸을 기댈 수 있는 곳이 되었을 것이고, 지난날의 원수는 모두 친척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改過遷善의 문은 손만 뒤집으면 열 수 있고 治世로 가는 길은 발만 들면 오를 수 있는데도 <昭公은> 목을 늘이고 죽기만을 기다리며 스스로 방책이 없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어리석다 하겠다.
- 武氏의 宗族이 曹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宋나라를 치다[武氏之族以曹師伐宋]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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