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아미산
모란꽃 향기[牡丹芳]
[唐] 백거이(白居易, 772 ~ 846) / 김영문 選譯
모란꽃 향기롭네 모란꽃 향기로워
홍옥으로 만든 방에 황금 꽃술 터졌네
천 조각 붉은 꽃잎 노을처럼 찬란하고
백 가지 진홍 꽃이 등불처럼 휘황하네
땅 비추며 이제 막 비단 자수 펼칠 뿐
바람 속에 난향 사향 주머니도 차지 않았네
신선 옥나무도 창백하게 빛을 잃고
서왕모 복사꽃도 향기를 잃는다네
밤이슬 동글동글 보랏빛 펼쳐내고
아침 태양 반짝반짝 빨간빛 비춰내네
보라 빨강 두 색 사이 짙고 옅은 색조 섞여
마주보고 등지면서 온갖 모습 뒤바꾸네
고운 꽃잎 다정하게 부끄러운 얼굴 감추고
누운 꽃떨기 힘없이 취한 모습 숨기네
어여쁘게 웃는 얼굴 고운 입 가린 듯
생각 잠겨 원망하며 애간장 끊는 듯
농염하고 귀한 자태 진실로 절색이라
잡다한 화초들에 비교할 수 없어라
석죽 금잔화는 얼마나 시시한가
연꽃 작약도 진실로 평범하네
왕공귀족 경대부도 마침내 몰려나와
수레 세우고 날마다 꽃구경이네
곱고 푹신한 수레 탄 고귀한 공주와
명마 타고 향기 풍기며 부자 도령도 섞였네
위공 저택 동쪽 정원 고요하게 닫혀 있고
서명사 북쪽 회랑 깊숙하게 열려 있네
춤추는 나비 쌍쌍이 오래도록 사람 구경
쇠약한 꾀꼬리 한 번 울며 봄날을 늘리네
향기 태양 빛에 머물기 어려울까
장막 펼쳐 시원한 그늘 드리우네
모란꽃 피고 지는 스무날
온 성이 모두들 미친 듯
하·은·주 삼대 이후 문(文)이 질(質)을 뛰어넘으니
인심도 질박함보다 화려함 중시하네
화려함 중시하여 모란 향기에 이른 건
조금씩 쌓여 왔지 오늘 생긴 일 아니라네
원화 연간 천자께서 농사 양잠 걱정하며
백성을 구휼하자 하늘이 길상 내리셨네
작년에는 가화(嘉禾)에 아홉 이삭 달렸지만
논밭에는 쓸쓸하게 아무도 가지 않았네
올해는 서맥(瑞麥)에 두 가지가 자랐지만
임금 혼자 기뻐할 뿐 아무도 모른다네
아무도 모르니, 진실로 탄식할 뿐
이 내 몸 잠시라도 조화옹 힘을 빌려
요염한 모란꽃 화려한 빛 줄이고
모란꽃 사랑하는 공경대부 마음 식혀
농사 일 걱정하는 우리 임금 닮게하리
경복궁 아미산의 모란
牡丹芳, 牡丹芳,
黃金蕊綻紅玉房.
千片赤英霞爛爛,
百枝絳點燈煌煌.
照地初開錦繡段,
當風不結蘭麝囊.
仙人琪樹白無色,
王母桃花小不香.
宿露輕盈泛紫豔,
朝陽照耀生紅光.
紅紫二色間深淺,
向背萬態隨低昂.
映葉多情隱羞面,
臥叢無力含醉妝.
低嬌笑容疑掩口,
凝思怨人如斷腸.
濃姿貴彩信奇絕,
雜卉亂花無比方.
石竹金錢何細碎,
芙蓉芍藥苦尋常.
遂使王公與卿士,
遊花冠蓋日相望.
庳車軟輿貴公主,
香衫細馬豪家郞.
衛公宅靜閉東院,
西明寺深開北廊.
戲蝶雙舞看人久,
殘鶯一聲春日長.
共愁日照芳難駐,
仍張帷幕垂陰涼.
花開花落二十日,
一城之人皆若狂.
三代以還文勝質,
人心重華不重實.
重華直至牡丹芳,
其來有漸非今日.
元和天子憂農桑,
恤下動天天降祥.
去歲嘉禾生九穗,
田中寂寞無人至.
今年瑞麥分兩岐,
君心獨喜無人知.
無人知, 可歎息.
我願暫求造化力,
減卻牡丹妖豔色.
少回卿士愛花心,
同似吾君憂稼穡.
落花. 몇년전 국립현충원에서
영화 《황산벌》이 말했던가? 꽃은 화려할 때 지는 기라고? 그 화려함에서 꽃 중의 꽃은 단연 모란이라, 괜시리 그를 화왕(花王)이라 일컫었겠는가. 화려함은 순식간에 발산한 에너지가 폭발한 모습이니, 이를 누설淚洩이라 이름한다. 화려하기에 꽃은 기껏해야 생명줄이 스무날 남짓했으니, 이 역시 한 송이가 스무날을 간 것이 아니요, 이 송이 저 송이 모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고지며 연장하는 시한부 인생 총합이 스무날에 지나지 아니한다.
그 스무날이 아까워 차양을 치고는 그늘을 만들어 그 전광석화 같은 시간을 늦잡고자 했으니, 초여름 문턱 퇴약볕 드러난 모란을 유심히 살핀 적 있는가? 축 늘어진 그 꽃술은 영락없는 오뉴월 소불알이요, 그 힘 없음은 누설하고는 풀 죽은 음경에 진배없다. 싱싱함을 유지코자 태양을 막고자 차양을 쳤으니, 그리하여 단 하루라도 생명을 연장해 모란을 즐기고자 했다.
백씨 낙천 거이가 이를 묘사하기를 "향기가 태양 빛에 머물기 어려움 근심하여 장막을 펼쳐서 시원한 그늘 드리우네"라고 했으니, 이 대목이 바로 내리쬐는 태양에서 모란을 지키고자 한 발악이다.
그래도 모란은 피고진다. 그 "모란꽃 피고 지는 스무날 온 장안성 사람은 모두들 발광한 듯하네"라니, 그 사뭇한 풍광이 1천200년 시간 간극을 뚫고서 경복궁 아미산으로 여진으로, 전율로 전하노라.
김영문 선생 옮김을 약간 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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