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48)
유조변에서 달구경 하며[柳條邊望月]
[청(淸)] 현엽(玄燁: 강희제康熙帝) / 김영문 選譯評
비 개인 높은 하늘
저녁 무지개
휘영청 달빛 속에
변방 길 머네
봄바람은 적막하게
버들에 불고
차가운 빛 흩날리며
먼 하늘 넘네
雨過高天霽晚虹, 關山迢遞月明中. 春風寂寂吹楊柳, 搖曳寒光度遠空.
(2018.05.29)
유조변柳條邊은 청淸나라 조정에서 자신의 발상지 만주 지방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봉금(封禁) 경계다.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동북 방면으로 길게 낮은 토담을 쌓고 그곳에 버드나무를 심은 후 유조변이라고 불렀다.
청나라 4대 임금 강희제康熙帝는 세 차례 몽골 부족 준가르 족장 갈단葛爾丹을 친정하는 등 자주 변방으로 행차했다. 관산關山은 본래 지금의 닝샤寧夏 남부 류판산六盤山 일대이지만 여기에서는 산해관 유조변 인근의 산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강희제는 서법에도 뛰어났고, 시문에도 일가를 이룬 문화 군주였다. 이 시를 읽어봐도 봄철 변방 저녁 무지개가 지고 달이 뜬 청량한 풍경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적막하면서도 맑고 드넓은 풍격이 강희제의 문화적 소양을 잘 드러낸다. 황제로서의 고결한 품성과 인간으로서의 고독한 내면이 어우러져 독자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휘영청 달빛 아래 혼자 서면 쓸쓸한 실존의 고독감에 마음이 스산해진다. 내 삶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생명은 나의 생명일 뿐. 어렴풋하고 휘영청한 달빛 속 저 산 허리로 휘감아도는 길은 또 막막하고 아련하다. 그 길 옆으로 내 생명의 원천인양 작은 시내가 흐르고 그 시냇가 언덕엔 어슴푸레한 버드나무가 적막한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달빛은 차갑고 봄바람은 적막하다. 나는 지금 먼 하늘 달빛 아래 변방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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