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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모란 피었다기에 득달처럼 달려들어 껴안곤 물었다

by 한량 taeshik.kim 2020. 4. 18.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934년 4월 간행한 《문학》3호에 실렸다가 이듬해 시문학사에서 나온《영랑시집》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너가 핀 줄도 몰랐다.
우연히 행차한 우연한 장독대에 너가 핀 모습 하염없이 본다.

그래 이맘이면 모란도 만발이라 다른 선하들 꼬꾸라져 여름인가 하는 그때 비로소 구린내 비스한 향기 뿜으며 피어나는 너야말로 봄의 만가 輓歌, dirge 요 스완송 swan song이다.

하지만 모란으로 봄은 끝인가?


이 꽃이 피고져야 비로소 봄끝 여름시작이라 하는데

화왕花王 모란이 오뉴월 소불알처럼 축축 늘어져 그 꽃 이파리 짓이김 당할 즘

저 아왕亞王이 마침내 빛을 발하니 그를 일러 작약이라 한다.

 

둘은 개화시기가 약간 달라 겹치기 출연 보기가 어렵지만 잘만 조절하면 썩 생소도 아니어니와

모란 피고 지는 경복궁 아미산으로 잘 지니라.

느닷없는 조우에 할 말 잃었다가 겨우 건넨 말.

너가 있으므로 비로소 봄일 줄 알겠더라. 

그래서 보고 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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