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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못배운 한

by 신동훈 識 2025.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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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적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호적 등본 같은 것이 아니다. 

이승만 부자


정확히 말하면 조선시대 호적은

호적에 병적기록부 (특기까지 기재), 그리고 심지어는 재산에 사회적 지위까지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당시 호적에는 이름과 자신의 직역, 3대조 벼슬까지 모두 적고 

주호(호주)의 이름 아래에는 거느린 노비들 이름까지 죄다 적어 놨기 때문에 

농사일이 노비사역으로 주로 이루어지던 시대에는 이는 그 집의 재산상태, 토지 소유 상태까지 엿볼 수 있다고 해도 되겠다. 

20세기 한국인 특유의 이른바 "못배운 한"은 

조선시대 후기의 이러한 호적기록 방식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호적에서 양반과 평민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구분선은, 

결국 내 이름에 "유학"을 달 수 있는가 없는가다. 

유학이란 과거를 볼 수 있는 관료예비군 같은 것이지만, 

유학이라는 직역을 달아 놓으면 군역에서 빠지고

양반으로 인정받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로 올라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호적에 유학으로 적히냐 아니냐는 17-18세기에도 매우 엄중한 일로

자신의 직역을 유학이 아니라 한량으로 적어놨다 하여 대판 싸움이 나는 기록도 본 바 있다. 

사실 한량만 해도 평민이라 보기는 어려운 직역으로 

무과 예비군 쯤 되는 사족 끄트머리가 많았는데도 

그래도 이들보다는 유학이 보다 쳐주는 직역으로 

18세기까지도 아무나 달 수 있는 직역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처럼 양반의 신분증이나 다름 없던 유학이 

결국 "글을 하면서 과거 준비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문제겠다. 

사회의 지배층으로 올라가는 자격이 글을 할 줄 아는 잠재적 관료군과 동의어가 되면서

비로소 "못배운 한"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19세기에 동네마다 "유학"이 가득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결국

"나도 글 할줄 안다"라는 사람들이 가득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20세기 한국을 상징하는 교육열의 선구는 결국

조선 후기 "유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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