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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9세기가 되면
자기 집안에 등제자가 한 명도 없거나
미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대과 합격자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 바,
이 사람들이 과연 전부
"잔약해진 양반 집안 출신"들일까?
이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필자가 보기엔
19세기 유학모칭자들이 섞여 있다.
19세기 유학모칭자들은 단순히 군역이나 빠지려고 유학을 모칭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과거에도 응시하여 명실상부한 사족으로 발돋움 하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그 결과가 족보나 호적으로 봐도 집안에 등제자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혈혈단신 대과 급제자가 많이 나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과 급제자가 이럴진데
이보다 더 많이 뽑는 사마시 (소과) 급제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도 아마 유학모칭자들이 바글바글했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유학모칭자는 양반이 아니라는 시각을 보는데,
왕후장상도 씨가 없는데
유학과 양반에 무슨 씨가 있겠는가.
내가 모칭한 유학으로 호적에 그리 적히고
그 준호적을 들고 과거를 보러가서 소과라고 급제해
출신으로 진사나 생원이 되어버리면
그 집안은 양반이 되는 것이지 양반이 무슨 대단한 씨앗이 있다고
그 부, 조부, 증조부에 등제자가 있고 없고가 중요하겠는가.
이렇게 19세기에 등제까지 해버린 유학모칭자들이
구한말에 상당수 중앙정계까지 진출했으리라 필자는 생각한다.
구한말의 소위 "양반후손"들 중에는
이러한 유학모칭자들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라 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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