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화재 업무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무엇일까?
지자체 문화재 부서에서는 문화재와 관련된 많은 일을 처리한다. 문화재 발굴조사, 보수정비 공사, 학술연구, 활용사업, 천연기념물 구조까지.... 이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건축 인허가와 관련된 문화재 민원일 것이다.
단순히 민원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 민원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 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민원인데, 개인이 집을 짓는 일부터 대규모 택지개발, 도시계획시설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런 크고 작은 개발 사업은 최종 인허가를 위해 관련 법률에 저촉사항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건축허가과, 도시개발과, 도로과 등등 모든 개발 관련 부서에서는 인허가 검토 과정에서 관련법 저촉 여부를 협의하게 된다.
관련법 저촉 여부 협의는 말 그대로 관련부서 전체에 협의 문서를 보내면서부터 시작한다.
환경, 상수도, 하수도, 지하수, 도로명주소, 주차장, 정보통신, 산지, 농지, 개발제한구역, 전기, 도로, 폐기물, 소음, 진동, 대기오염, 국유재산, 국토의 계획 및 이용, 경찰서 등등.... 정말 많다.
따라서 인허가를 담당하는 부서는 관련법 협의를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기 위해 신경써야 하고, 사업자 역시 모든 관련법 협의 내용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협의하는 관련법 중 하나가 바로 ‘문화재 관련법’이다.
이 문화재 관련법 협의는 크게 1.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 주변 건축행위인지에 대한 검토 2.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유물산포지라고 불리는 지역 내 이루어지는 사업인지 검토하는 것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
두 가지 사항이 각각 발생할 수도 있고, 한 번에 모두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1번에 해당하는 문화재보호법 관련 협의만 살펴보겠다.
이 과정에서 저촉사항이 없으면 간단하지만, 문화재 주변에서 개발이 이뤄진다면 지자체에서는 사업의 검토부터 인허가 협의, 심의, 변경 등의 많은 일을 해야한다. 이 일은 몇 달만에 끝날 수도 있지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사업자와의 협의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거나, 해서는 안될 말을 퍼붓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화재 행정업무와 지자체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먼저 문화재 행정업무를 지자체에서 수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관련법에 지자체가 위임받아서 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지정 문화재 업무는 시.도에 위임되었고, 시.도는 다시 지자체에 위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지정 문화재, 도지정 문화재 관계없이 문화재 관련 민원의 출발은 지자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정 문화재 주변에 개발을 하기 위해 받는 허가에 대해 예전엔 현상변경 허가라는 말을 썼지만, 요즘은 문화재 주변 건축행위 허가라고 부른다.
그럼 지자체에서 문화재 관련 행정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략 살펴보자.
대규모 택지개발, 도시계획시설, 단독주택 공사 등 규모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아래와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개발사업 부서 또는 건축담당 부서에서 사업자로부터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관련법 협의 공문을 각 부서에 보내고, 문화재 부서에서는 이 계획을 검토하여 문화재 관련법 저촉여부를 판단한다.
검토 판단 기준은 대략 다음 그림처럼 설명할 수 있다.
역사문화환경 보존구역이라고 하는 문화재보호구역 외곽 300m/500m 반경 안에 들어오는 건축행위가 허용기준을 초과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초과할 경우 광역,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협의 의견을 보낸다.
이 허용기준이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구역(1, 2, 3...)을 설정하여 건축물 높이 기준을 사전에 작성한 것으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허가를 받으려는 민원인에게 예측 가능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이다. 허용기준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시에 의해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모든 지정문화재 허용기준을 검색해서 확인할 수 있다.(문화재청-행정정보-고시-현상변경허용기준 고시)
최근 모 지자체에서 왕릉 주변 아파트 건설공사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지자체 검토과정에서 변경된 허용기준 고시를 받지 못한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관련부서 협의를 마치면, 인허가 부서에서는 협의 의견을 사업자에게 알려주고, 이 협의 의견을 받은 사업자는 문화재 주변 건축행위 허가 신청서를 문화재 부서에 제출한다.
그럼 지자체 문화재 부서는 이 신청서를 받아 광역, 문화재청에 제출하는데, 신청서 작성이 잘 되었는지, 만약 미흡한 부분은 어떻게 보완이 필요한지도 검토해서 알려줘야 한다. 문화재 관련 업무라고 하지만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문화재 담당자는 건축, 토목 도면까지 읽을 수 있어야만 하는데, 처음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렇게 제출된 허가 신청 사항에 대해 광역/문화재청에서 현지조사를 나오면, 관할 지자체 문화재 담당자가 현장설명과 사업설명까지 맡아서 한다. 그리고 심의결과(허가, 불허가)를 관할 지자체에 내려주면, 지자체에서 이 심의결과를 사업자에게 다시 통보해 준다.
끝난 것 같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고, 이 허가사항에 대한 착수, 완료 신고 접수까지 지자체 문화재 부서의 몫이다.
만약 불허가가 나온다면, 다시 이 행정절차를 반복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업자의 불만의 목소리 역시 대부분 지자체에서 감당한다.
그리고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사업내용이 변경되면 변경된 사업내용에 대해 앞의 허가 신청 과정을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진행한다.
아, 이 문화재 주변 건축행위 허가는 허가기간이 있어서 기간 내에 착수하지 않으면 허가가 종료된다.
허가가 종료되기 전에 사업자에게 알려주는 것까지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이다.
결국 문화재 관련 행정업무는 지자체에서 시작해서 지자체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문화재 업무를 수행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지 그리고 왜 문화재 담당 전문인력이 배치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이 포스팅에 경주시에서 생평을 학예연구사로 일하다 그 문화재과장으로 얼마전 퇴임한 이채경 선생이 아래와 같이 썼다.
인구 25만이 조금 넘는 경주시의 경우 이런 각종 개발과 관련된 협의문서를 문화재과의 문화재연구팀(학예연구사들이 팀장과 팀원으로 4인임)에서 지역별로 나누어서 맡아서 검토하고 회신하였는데 1년에 1인당 대략 800여건이 넘도록 처리하였으니 총량이 3,500건 정도였다. 이렇게 물량이 많아도 1인 당 맡은 업무의 전체 비율로 따지면 25%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가히 살인적인 업무량의 폭주였다. 자칫 잘못하면 처벌받기 십상인 함정이 지뢰밭처럼 도사리고 있어서 껀껀이 치밀하게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고 문화재청이나 도청에서 표창대상자 추천하라는 공문이 와도 공적조서 만들 여유조차 없어서 상받는 일도 남의 일처럼 여겼다.
'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각산 아래 양지바른 마을, 삼양동 (0) | 2022.01.01 |
---|---|
겨울나기 준비하는 용인 서봉사지 (0) | 2021.12.17 |
용인 보정동 고분군 발굴성과 학술대회 (0) | 2021.11.26 |
[전국학예연구회]학예사는 박물관의 꽃? or 만능 머슴? (0) | 2021.11.22 |
만천명월(萬川明月), 수원 화성 한바퀴 야행 (0) | 2021.10.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