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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임란 직전 조선의 만물상 미암일기를 읽으며

by 신동훈 識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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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일기

 
미암일기를 읽고 있는데

이 책 번역이 담양향토문화연구회-. 

분량이 장난 아닌데, 

내용도 지금까지 읽은 일기 중 가장 탁월한 듯 하다. 

이 양반 굴지의 대학자라 일기에 써둔 학문적 내용들도 매우 수준이 높고

뭐 먹었는지 꼼꼼히 적어 놓아 필자의 작업에도 일급 사료인 바, 

이 분량의 거질 일기를 담양향토문화연구회라는

일개 지방 연구회가 완역을 해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뭐 하는 양반들인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침 인터뷰 기사가 있길래 아래에 남겨 둔다. 

https://www.munhwa.com/article/10030828

어느 향토사학자의 '眉巖日記 사랑'

www.munhwa.com

 
필자는 이 분야 연구자는 아니라도 명색이 대학의 녹을 먹고 있는 바,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보는 바다. 


*** 편집자주 ***

흔히 조선시대 유배의 대명사로 18년을 남도에 짱박힌 정약용을 떠올리나 미암 유희춘은 물경 19년을 저 생활로 보냈다.

다산이야 따듯한 남쪽에 나라 강진에서 바다 구경이라도 했지 미암은 북방 함경도 종성에서 여진족이랑 생활했다.

미암은 1513년 생이라, 율곡보다 23살이나 많지만, 관직생활은 거의 겹친다. 

물론 출사야 훨씬 빨랐지만, 미암은 1547년 이른바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처음에는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호강한다 해서 함경도 종성으로 훅 날아가 그곳에서 기약없는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죽 함경도 생활만 한 것은 아니라서 유배 생활 말년에는 충청도 은진으로 이배되었다가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세상이 바뀌었다 해서 삼정승이 연명 상소하는 형식을 빌려, 과거는 묻고 가자 해서 비로소 석방된다. 

한창 일할 나이인 서른셋에 훅 날아갔다가 다 늙은 쉰셋에 석방되어 갖 과거 급제하고서 지내는 사무관급을 전전하게 되니, 직강 · 응교 · 교리를 거쳐 장령 · 집의을 지냈으며 나중에 대사성, 부제학,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선 1575년, 선조 8년에야 예조참판이 되고 이어 공조참판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전라도 고향으로 낙향하고선 졸한다. 

당상관이 되기는 했지만, 하도 젋은날을 유배로 보냈으니 그 좋다는 판서 한 번 못해 보고 훅 간다.

그래도 함경도 오랜 생활한 사람으로서는 장수를 했으니, 실상 율곡과 같은 시기에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 안 좋았다. 당파도 달랐다.

이이는 미암을 아주 우습게 본다. 늙은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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