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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법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령을 들겠다.
이 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 외에도 다수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학력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 대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1945년 일본이 망할 때까지 조선땅에는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유일한 대학 경성제대는 "대학령"이 아니라 "제국대학령"에 따라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령에 의해 다수의 대학이 만들어진 일본 땅에는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대학령이 발효된 1919년 이후 일본에는 대학 수가 급증했다.
대학령 발효 후 불과 6년 만인 1925년이 되면 5년 전에 비해 대학수와 학생수가 모두 두 배가 불었다.
이로부터 다시 5년 후에는 대학수가 46개, 대학생수는 7만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전문학교는 포함도 안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일본이 패망하는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동일 시기에 일본은 같은 대학령에 입각하여 만들고자 하는 민립대학과 연전, 보전 승격운동을 계속 승인을 미루었다.
그런 상태에서 결국 1945년까지 대학령에 입각한 대학은 단 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해방이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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