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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제시대 지식인: [26] 이강국과 [27] 김태준

by 초야잠필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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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한 두 사람에 대해 한꺼번에 살펴본다. 

이강국李康國(1906~1957?)은 해방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월북, 미국의 간첩혐의로 그곳에서 처형된다. 


보성고보 (1925) -- 경성제대 예과 (1927) --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 (1930) -- 경성제대 법문학부 연구실 조수 (1930-1932)


경성제대 조수 경력 뒤에는 독일 유학 경력까지 있다. 

최근 이강국은 남로당 계열을 숙청하기 위한 북한의 조작이 아니라 정말 미국에 고용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전문적인 스파이로 활동해야만 먹고 살 만한 경력은 아니다. 

당시로서는 조선인 중 최고 수준 프로필이고 경성제대 조수를 마칠 때까지 단 1년의 공백도 없었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의학부 쪽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앞에 보이는 길이 대학로이며 법문학부는 현재 마로니에 공원으로 바뀌었다.

 
해방 이전 저명한 국문학자로 진단학회에서 활동하고 경성콤그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국면 국대안 파동 주동자로 남로당 활동을 하다 처형당한 김태준金台俊(1905~1949) 경력은 다음과 같다. 


영변농업학교와 이리농림학교 -- 경성제국대학 예과 (1926-1928)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1928-1931)


김태준은 남로당 활동보다는 국문학자로서의 역할이 더 뚜렷하다. 

해방 이전 이미 국문학계에서 저명한 위치로 경성제대의 교원으로 남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었는데 경성콤그룹 사건으로 해직되었다고 한다.

해방이후 경성대에 복직하지만 국대안 반대를 주동하여 다시 해직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남로당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국대안 사건이 없었다면 김태준은 경성대에서 해직되지 않았으리라 보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가 남로당 활동을 하다 처형당하는 단계까지 갔을까? 

해방 전 그의 프로필을 보면 좌파적 지식인은 분명하지만 해방 이후 남로당 지하활동은 경성대 해직의 여파로 보인다. (확신할 수는 없다.) 

김태준이나 이강국은 필자와 동년배였다면 아마 지금쯤 어느 대학인가에서 좌파 지식인으로 평범하게 살며 연구하고 있었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이강국과 김태준은 경성제대 1년 차이로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프로필로 당시 최고 수준의 엘리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로당 계열은 프로필의 측면에서만 보면 당시 남한 정권에 적극 참여한 지식인들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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