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한성백제시대 목구조 우물이 발견됐다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52번지 일원은 그 중대성을 논하려면 위선 지도를 꽂아야 한다.
참고로 나는 평면도보다는 위성지도를 선호한다. 아래가 그 지점이다.
보다시피 풍납토성에서는 좀 멀지만 몽촌토성에서 아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한다. 석촌동고분군과도 인접한다.
뭐 볼짝없다. 왕경王京이다.
한성기 백제 최중심지는 생활공간으로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고,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으로는 석촌동고분군이라, 그것들이 포위한 지점을 위치하는 저곳에서 드러난 백제의 흔적은 말할 것도 없이 왕경 위례성의 흔적이다.
어찌 사람이 성 안에만 산단 말인가? 저런 성은 왕족을 위한 배타하는 공간이라, 일부 정부기구도 들어가 있었겠지만, 여타 사람들은 모조리 성을 벗어난 지점을 도시를 이룩하고 살았으니, 이를 왕경이라 한다.
종래 백제고고학이 저 세 군데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주변 지역을 파제끼니 역시나 왕경 흔적이 오롯이 드러난다.
더구나 이번 방이동 52번지 일대에서는 도로 흔적이라 할 만한 것들도 뚜렷이 드러났다.
이번 조사 최대 성과는 우물이 아니라 도로다.
이 도로야말로 왕경을 받침하는 절대 증거다.
한데 저 지점 네이버지도를 두들기니 저와 같은 안내가 뜬다.
방이동복합청사. 2024년 12월 준공 예정. 그랬다. 이번 조사가 있게 한 원인이 바로 저 청사 건립이다. 저 청사 건립을 앞두고 이곳은 백제 왕경으로 의심하는 곳이니 파 보라 해서 파제꼈더니 저와 같은 성과가 나왔다.
그 자세한 성과는 따로 자리를 마련할 테고, 이에서는 위선 이번 발굴성과 중에서도 단연 대중의 구미를 끌 만한 우물을 파보기로 한다.
서울 방이동(52번지 일원) 송파방이 노후공공청사 복합개발사업부지 정밀발굴조사에 포함된 이번 조사는 중부고고학연구소라는 기관에서 했다.
발굴에 관한 한 일가를 이루었다는 김권중이가 오야붕 노릇을 하는 기관이다.
전체 조사면적은 2만130㎡인데, 이중 본격 발굴한 데가 1만5천919㎡요, 나머지 4천211㎡는 시굴 조사를 했다.
조사성과를 연구원에서는 토층에 따라 지표상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나름 구분을 했는데, 간단히 상층과 하층으로 구분하고, 하층은 무슨 근거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층과 하층으로 다시 분기했다.
따라서 그네들 발표에 의하면 이번 조사구역 문화층은 상층과 상하층, 하하층 세 가지로 크게 분기한다.
이를 조사단은 하1층, 하2층으로 썼다.
다만 시기는 한성백제 초기는 없고, 모조리 5세기 이후로 본다.
간단히 서기로 환산하면 서기 400년쯤 이래 475년 백제멸망까지 대략 1세기반 정도에 만든 흔적으로 본 것이다.
조사단에 의하면 목조 우물은 하2층에서 수혈유구 42기, 구상유구 16기와 함께 발견됐다고 한다.
한데 이 목조우물은 기존에 있던 것을 고쳐서 다시 쌓은 흔적이 발견됐다 한다. 두 가지 흔적이 모두 나왔단다.
둘 다 목조인데, 구조가 다르고, 무엇보다 그것이 발견되는 지점이 하나는 위, 하나는 그 아래에서 발견되니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래에 있던 것이 그 이전에 만든 목조 우물이고, 그 위에서 확인된 목조 우물은 그것을 깔아뭉개고 새로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또 당연히 앞서서 만든 우물은 상층부는 다 날아가고 아래층만 남았을 것이며, 실제 발굴결과를 봐도 그렇다.
물론 조사단이 오판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예컨대 아래층에서 드러난 선대 우물이라 파악한 것이 예컨대 목조우물 하부구조라면 어찌할 것인가?
물론 그 정도로 조사단이 바보일 수는 없다.
다만, 나 역시 1차 2차 목조우물로 구분한 조사단 의견을 존중하나, 저 가능성까지 내쳐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암튼 조사 결과 우물은 처음이 목조 우물을 조성한 초축부와 그 위에 다시 목조 우물을 조성한 증축부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조사단은 초축 우물과 증축 우물은 규모와 주축방향이 상이한 것으로 보아 초축 우물을 사용하다가 목재의 교체와 저수 용량의 확대 등의 필요에 의해서 증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목조 우물은 평면형태가 다 같은 ‘井’ 자 형태다. 당연히 내부 역시 평면 방형이다.
초축부는 한 변 길이가 95㎝ 정도이고, 증축부는 한 변 길이가 110㎝ 정도다. 정방형에 가깝다.
이와 같은 우물은 풍납토성 경당지구 206호와 풍납토성 동벽 바깥 대진동산연립주택부지에서 확인된 백제한성기 우물이과 대략 같다.
더구나 앞선 저들 우물 역시 한변 길이 120㎝ 안팎이라 이번 것과 비교하면 크기 구조 거의 같다.
특히 이번 우물은 대진동산지구 우물과 일란성쌍둥이다.
상층 우물에서는 주로 내부 퇴적토에서 조각들이 뒤섞인 채로 확인되며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빈도가 증가한다.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무거운 것들은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테니 말이다.
상층과 하층 우물 경계면부터 완형 토기가 노출되기 시작하는데 기종으로는 주로 항아리류가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속 깊은 바리 모양 기종도 간간이 있다.
항아리는 볼짝 없다. 대진지구 출토품 양상을 보면 모가지에 새끼줄을 달았으니 두레박이다.
기타 고배, 어망추 같은 목기도 확인되거니와 이건 마누라한테 얻어터진 남편들이 신경질나서 버린 것들이다.
유의할 것은 상층 우물을 걷어낸 다음 노출된 아래층 우물 유물 출토 양상이다.
조사단 추정대로라면 이 1차 우물은 모종의 이유로 폐기됐다.
간단히 말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우물이 죽은 것이다.
죽은 우물을 어찌할 것인가? 장사를 지내야 한다. 곡을 해야 한다. 이른바 훼기毁器라 해서 주둥이를 일부러 깨뜨린 토기들이 나와야 한다!
왜? 죽은 사람을 장사할 때 묻어주는 토기는 그것이 죽은 자를 위한 표식으로 일부러 깨뜨려 넣기 때문이며, 우물 역시 사람과 똑같이 쳐서 그렇게 장사를 지냈다.
그렇다면 이곳 1차 우물에서는 어떠한가? 보나마나다.
바닥에서 출토된 완형의 토기류는 우물 조성 또는 사용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는 구연부가 파쇄된 것으로 추정되어 향후 보존처리를 거쳐 출토위치와 출토정황, 내부토 분석 등을 통해 의례 등의 행위에 대한 분석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외에도 동정이 필요한 씨앗류도 출토되었다.
내 말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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