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칠피갑옷은 글자 그대로는 옻칠을 입힌 미늘 장식 갑옷이라는 뜻이라, 옻칠은 오래 가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다른 유물에 견주어 오래남고, 또 옻칠이 주는 특유한 감성이 있어, 이번에 부여 관북리유적에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했다는 백제 말기? 칠피갑옷은 상태가 썩 좋지 아니하나, 이와 흡사한 공주 공산성 출토 칠피갑옷은 그것이 습지에서 바로 출토한 까달에 뺀질뺀질한 윤기가 난다.
연구소도 그런 말을 했듯이 이번 관북리유적은 여러 모로 공산성 출토품과 유사하다. 문제는 이에서 대두한다.
공산성은 이 칠피에 글자들이 적혀 있어 그것을 만든 시점이 내 기억에 645년인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기 전이라 여러 모로 골치를 주었다. 이 공산성은 660년 여름인가에 나당연합군에 함몰되는데 왜 그 이전에 만든 갑옷이 출토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한 것이다.
이는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이 조사단인 공주대에서는 백제 유물로 판정했지만, 삼척동자도 안다. 중국 제품이며, 중국 장수가 썼던 것이다.
백제 멸망 이전 당나라 갑옷이 출토할 가능성은 여러 가지인데, 예컨대 저때 생산된 갑옷을 입고 백제 멸망 이후 웅진에 진주한 당군 장수가 입다가 더는 견딜 수 없다 해서 버린 흔적일 수도 있다.
이번 관북리 유적 칠피갑옷도 결국 이 국적문제를 대두하는데, 조사단에서는 그런 말은 입도 뻥끗 하지 않으면서 저들 칠피갑옷이 "폐기된 다량의 유물과 불 탄 목탄 함께 출토돼 백제 멸망 당시 혼란 상황 추정"케 한다고 했거니와, 바로 이 대목에서 조사단 노심을 엿보게 된다.
백제 멸망 당시 혼란스런 사정에서 폐기된 것이라고 하면, 저것이 어찌 꼭 백제 사람 혹은 백제 말이 덮어쓴 갑옷이라 하겠는가?
모르긴 해도 내심 당나라 제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저런 말을 했을 것이다. 괜히 백제라 했다가 나중에 보존처리 과정 등등에서 그것이 아닌 증거가 나오면 쪽팔리잖아?
이 갑옷 국적 문제는 이미 공산성 출토품이 중국산으로 판정난 마당에, 또 이번 출토품이 추정이기는 하나 백제멸망기 운운이라 하니, 백제라는 미련은 과감히 버리고, 접근해야 한다.
동시대 당나라 갑옷에 대한 연구가 있다면 금상첨화겠거니와, 뭐 한국고고학이 매양 하는 일이라고는 개돼지나 하는 유사출토품 비교이니, 그런 작업을 금방 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덧붙여 이참에 다시금 부탁하는데 저와 같은 중요유물 나올 때는 제발 전업 작가 불러서 제대로 촬영해라. 사진 양태 도저히 못 봐주겠다. 이건 두고두고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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