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소-인용자)는 낭만주의운동의 시조이자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성에 위배되는 사실을 추론한 사상 체계의 창시자이며, 전통적인 절대군주제에 대립하는 유사 민주주의적 독재정치를 옹호한 정치철학을 고안한 사상가였다. 루소 이후 개혁가로 자처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한 부류는 루소를 추종하고 다른 부류는 로크를 추종했다. 때에 따라 그들은 협조관계를 유지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두 부류 사이에 양립할 수 없는 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양립할 수 없는 면들이 명백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이상 870쪽)의 후예로 평가한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러셀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2009.10
디종 아카데미는 "예술과 과학은 인류에게 이득을 제공했는가"라는 문제에 관한 가장 우수한 논문에 상을 수여했다. 루소는 부정적인 주장을 펼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1750)....예상한 대로 그는 스파르타를 찬미하고 아테네에 반대한다. 그는 일곱살 때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고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리쿠르고스의 생애를 숭배했다. 루소는 스파르타인처럼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우수성과 가치의 시금석으로 생각했지만 정교한 기술로 무장한 유럽인들이 전쟁을 통해 패배시킨 '고결한 야만인'을 찬미했다. (같은책 873쪽)
(2010. 03. 14 18:08:20)
***
지금 보니 러셀 원문을 확인해야 할 대목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암튼 이에 의하면 루소는 민주독재의 창시자다. 러셀이 나치즘 직접 원류로 루소를 지목한 것이다. 그에 앞서 루소를 절대 성전으로 삼아 이와 같은 독재를 실현한 인물이 있으니 로베스피에르다.
그에 견주어 서구가 지향하고자 하는 민주정 모델로는 존 로크를 설정한 셈이어니와, 내가 대략 보는 루소와 로크 관점과 러셀의 그것은 일치한다.
이 관점이 왜 그리 동양근대사회에 중요한가 하면, 절대정에서 민주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사회는 하나같이 루소를 추앙한 까닭이다. 100년 전 동아시아 지식인사회를 보면 루소를 열렬히 호명했다. 한반도 지식인들은 모조리 이쪽에 쏠렸고, 중국에서는 루쉰이 절대적인 스파르타 추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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