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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번역 역주는 찬撰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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撰이라는 말이 흔히 통용하기를 편찬, 창작에 가깝지만 중국에서는 고래로 자기 작품이 아닌 남의 작품을 편집하는 일도 이 말로 표현하곤 했으니, 이런 전통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데 이 말이 대체로 순수한 창작물을 선호해서 사용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다시피 《문선文選》은 양梁 소명태자昭明太子 찬撰을 표방했다. 편집조차 찬撰으로 봤다는 의미다. 이는 물론 당시는 撰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편집을 撰으로 간주했다는 흔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중국 위진남북조 양나라 태자 소통이 자기집을 드나드는 문사들과 함께 묶은 시문 엔쏠로지인 문선文選을 보면 판본에 따라 소통 撰이라 적은 일이 많거니와 이 대목에 고래로 문선 주석서가 옛날에는 순수 창작이 아닌 자료 편집 정리에도 찬 이라는 말을 썼다는 언급이 보이는 점이 그 한 증거다.

우리 지식인 사회에선 역주나 번역 같은 데다가 저런 식으로 그런 결과물을 찬이라 표현하는 일은 드물다.

나는 이것이 번역 역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아직은 낮은 평가와 연결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분야 종사자들 스스로도 과감히 저런 결과물은 좀더 적극적으로 스스로 창작물화해야 한다고 본다.


임계방任繼昉 찬纂 《석명회교釋名匯校》(제노서사齊魯書社, 2006). 纂은 곧 撰이다. 《석명釋明》이라는 사전을 임계방이라는 사람이 교정하고 주석한 것이니, 당연히 그 결과물 《석명회교釋名匯校》는 임계방 저술이 아니겠는가? 



如컨데 내가 논어 역주를 내고 그 제목을 《역주 논어》라 붙였다고 하자. 이건 내 작품인가 아니면 공자 문도의 작품인가? 장담하노니 내 작품이다.

함에도 우리는 통상 이런 성과물에 저자나 창작자를 바로 내세우지 못하고 역주 누구누구라 해서 스스로 깎아먹고 있다.

(201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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