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에도 막부는
막부의 존속을 위협하는 반란에 대해
막부의 개부 초기부터 이를 대비했고,
영주의 분봉과 직속 무사의 배양 등 유사시에는 쿄토에서 에도에 이르는 일본 열도의 중심부가
막부 옹위세력으로 채워져 반란 세력을 진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로 이런 목적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막부는 사무라이를 260년간 배양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무사도라는 것이 일본 전래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무사 계급 자체가 헤이케平家 이후 공가公家 세력을 분쇄하고 자라 나온 것은 틀림없는데,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변화하였다.
특히 에도막부 이후에는 이에야스 스스로가 선택한 유교 이데올로기가 이들 무사계급 정신세계를 지배하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무사도라는 것이 정립된 것은 에도시대 이후라고 보아야 옳겠다.
이 300년 가까이 배양한 무사도와 사무라이 계급,
그리고 막부의 운명은 메이지유신 정국에서 어떠했던가.
막말 위기가 닥쳐오자
이에야스가 예견한 것처럼
막부를 위협하는 반란은 일본의 서쪽, 변두리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는 조슈長州, 다른 하나는 사쓰마薩摩였는데
이 두 집안은 이에야스 시절 천하의 향방을 결정한 세키가하라関ヶ原 싸움에서 이에야스 반대편인 서군 편에 섰다.
그냥 서군에 속하고 눈치를 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군의 동량으로 활동한 덕에 세키가하라 싸움 이후 이 두 집안-.
모리毛利 집안과
시마즈島津 집안은
집안이 망할 위기에 처했었는데,
다행이 모리 집안은 감봉되어 서쪽 변두리 끝인 야마구치山口 현 지역에 조슈번으로 살아 남게 되었고,
시마즈 집안은 감봉도 없고 개역도 없이 원래 있던 사쓰마 지역 영주로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들은 에도막부 260년간 은인자중 칼을 갈고 있었는데,
마침내 들고 일어나 막부와 전쟁을 시작한 것이 바로 막말, 메이지유신의 시작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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