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계신 부모님께 부치는 편지[寄家書]
[조선] 이안눌李安訥(1571~1637)
편지에다 살기 고달프다 쓰려다
백발 어버이 근심하실까 두렵네
북녘산에 내린 눈 천길이나 되나
올겨울 봄처럼 따뜻하다 아뢰네
欲作家書說苦辛, 恐敎愁殺白頭親. 陰山積雪深千丈, 却報今冬暖似春
애미 애비한테 살기 힘들다 징징거리는 자식이 때론 부럽기도 하더라. 그 징징거림을 떵떵거림으로 바꿔줄 힘이 부모한테 있을 때다. 이를 우리는 갑질이라 한다.
이하는 기호철 선생이 붙인 평을 정리한 것이다. 참고바란다.
그렇다면 이 시는 절절한 효성을 노래했는가?
이 시는 이안눌이 29살이던 1599년(선조 32)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함경북도 병마평사兵馬評事에 제수되었을 때 지은 시이니, 생부와 양부 모두 별세한 후이고 양모 구씨와 생모 이씨가 살아 있을 때다.
그런 점에서 저 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이 시를 썼는가?
동악 이안눌은 시 솜씨가 어떤지는 재종질 택당 이식이 잘 알았고, 실제로도 뛰어난 시인이다.
중의적 표현이 대단히 많아 번역해 놓고서도 당시 전후 사정을 다 살펴봐야 원의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데 이 시는 중의적 표현이 거의 없는 담백한 시에 속한다.
한데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시가 연작시 중 제1부라는 점이다.
그 2부를 봐야 온전히 이 시가 지닌 이데올로기가 풀린다는 점이다. 이
이어지는 시는 다음과 같다. 기호철 선생 번역이다.
머나먼 변방 산은 드높고 길이 험하나니
변방 사람 서울 닿을 땐 해가 다 갔으리
봄날 부친 편지에 가을 날짜를 적은 것은
부모님 근래 보낸 편지로 여기실까 해서라오
塞遠山長道路難, 蕃人入洛歲應闌. 春天寄信題秋日, 要遣家親作近看.
기호철 선생은 이를 들어 실은 이 시가 "부모님 핑계로 인사발령 불만 만땅한 시"라고 평하거니와, 음미할 만한 주장이다. 따라서 고도의 정치색을 지닌 문학인 셈이다.
이안눌은 선조 32(1599)년 29살에 정시庭試에 을과乙科로 합격하여 8월에 승문원承文院 권지부장자權知副正字로서 함경북도咸鏡北道 병마평사兵馬評事가 되어 멀리 나간다. 10월에야 경성鏡城에 도착한다.
저 시를 써서 불만을 표출하고서 이듬해 3월에 병을 이유로 체직을 청하여 허락받아 5월에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나 역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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