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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토성, 금관가야 왕궁을 위한 여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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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남쪽서 가야 시대 토성 내·외벽 발굴
송고시간 2020-12-03 16:06 
김동민 기자
봉황 토성 규모 구체화 중요한 실마리 제공

 

 

 

김해 봉황동 남쪽서 가야 시대 토성 내·외벽 발굴 | 연합뉴스

김해 봉황동 남쪽서 가야 시대 토성 내·외벽 발굴, 김동민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12-03 16:06)

www.yna.co.kr

 

이 기사 토대가 된 2020년 12월 3일, 김해시 관련 보도자료 전문과 첨부 사진은 아래와 같다. 

 

 

김해 봉황동 유적 남쪽 가야시대 토성 발굴
봉황토성 범위 구체화 중요한 실마리 제공

김해시는 봉황동 유적(국가사적 제2호) 남쪽에서도 가야시대 토성(봉황토성)의 일부(내·외벽)가 발굴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남쪽 토성의 범위는 추정만 하던 상황이어서 이번 발굴은 봉황토성의 위치 비정(比定)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가야시대 토성 김해 봉황동유적에서 발굴-1.조사대상지역 원경



시는 봉황토성 남쪽 중앙지점(봉황동 240번지 일원) 265㎡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지난 11월부터 (재)한화문물연구원에 맡겨 이번 주 완료한다. 

가야시대 생활유적인 봉황동 유적을 중심으로 토성의 흔적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학계는 서민, 귀족, 왕의 생활터전을 타원형의 토성으로 보호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해 시는 왕궁터 등의 발굴을 기대하고 있다.

 

가야시대 토성 김해 봉황동유적에서 발굴-2.조사대상지역 조사중(남-북) (1)



2003년 봉황토성의 내․외벽이 북동쪽 구간에서 일부 조사됐고 2014년 북동쪽 구간에서 외벽 일부가 확인됐으며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조사한 남서쪽 구간인 옛 봉황초등학교 부지에서 토성의 외벽시설이 넓게 조사됐다.

이처럼 봉황토성 조사구간들은 북동쪽과 남서쪽에 주로 치우쳐 있어 봉황토성의 남쪽과 동쪽의 범위는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석렬(石列)을 통해 추정만 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봉황토성의 그간의 조사 성과와 토성의 성토부에서 4~5세기대 토기들이 조사됨에 따라 금관가야 토성으로 판단된다. 

 

가야시대 토성 김해 봉황동유적에서 발굴-3.봉황토성 전경 편집



이번 조사구간에서 확인된 성벽의 바닥 너비는 13.1m, 상단 너비는 8.6m이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내벽부 0.9m, 외벽부 1.7m 정도이다. 외벽의 돌이 15단 정도 덮여 있고 내벽은 돌들이 5단 정도 남아 있다.

토성의 구조는 기존에 파악한 봉황토성의 것과 동일한데 목탄과 패각 등으로 인위적으로 다짐해 대지를 조성한 층(해발 2.4m)위에 점성이 강한 적갈색 점토와 혼토패각, 소성토 등의 흙을 섞어 자연 경사면을 따라 겹겹이 쌓아 성의 성토부를 만든 후 내벽과 외벽에 돌로 덮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또 대지 조성층에서 직경 6~10cm 내외의 탄화된 나무기둥과 바로 세워서 땅에 파 묻은 토기 항아리 2점이 조사됐는데 대지 조성 내지 성 축조 시의 의례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시대 토성 김해 봉황동유적에서 발굴-4. 토성 내벽부



시는 “이러한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사적과 보호구역 확대 지정 등을 추진해 봉황동 유적의 보존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김해시 의뢰로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화문물연구원은 동아세아문물연구원에서 독립한 신용민씨가 설립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이다. 성벽에서 출토하는 토기 파편들이 주로 4~5세기에 등장하는 토기들임은 근거로 금관가야 토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보았다. 

 

 

흙으로 성벽을 주축으로 쌓되, 그 안팎에다가 돌을 쌓아 덧댄 구조임을 본다. 그 바닥층에는 숯과 조개껍데기를 깔았다는데, 이는 한반도 성벽에서는 흔히 드러나는 현상으로, 곳에 따라서는 나뭇가지나 풀들을 까는 이른바 부엽공법과 통하며, 나무기둥 흔적은 풍납토성과 같은 데서 드러났듯이 판축을 위한 구조물 아닌가 한다. 

 

성벽, 특히 내부 중앙부에다가 토기를 박은 흔적은 1999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절단한 풍납토성 동벽에서 심발형토기가 그런 형식으로 발견됐으니, 다만 풍납토성의 경우 똥구녕이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쳐박았다. 한양도성 남산 구간에서도 도기를 이런 형식으로 쳐박아 묻은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상은 내가 보도자료만을 근거해 판단 혹은 해석한 것이므로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더 상세한 자료를 구해봐야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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