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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질병의 역사

부여 발굴 현장과 고대 기생충

by 신동훈 識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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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쓴것 같지만 

서울시내, 특히 사대문안의 지하 4미터 조선시대 유적층은 

장소를 안가리고 토양을 채취하여 기생충 검사를 하면 

거의 예외 없이 기생충란이 나온다. 

필자의 연구진이 직접 조사한 내역은 거의 그랬는데 

이는 조선시대 당시 한성부 사대문 안이 

회출이나 편충란 등으로 고도 오염이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오염이 심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를 들수 있겠지만

이건 사실 조선의 수도 한성부의 문제만은 아니고, 

기생충 감염의 관리가 전혀 안되던 전근대 도성들은 거의 다 이랬다. 

개인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무리 개인이 열심히 조심한다 해도, 내 주변이 기생충란으로 가득하다면 

회충편충은 걸릴수 밖에 없고, 

인분 거름으로 키운 채소를 쌈 싸먹는 한 무슨 수고 기생충에 걸리지 않겠는가. 

개인의 위생 방호로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러한 현상은 꼭 우리나라만 그런것은 아니고

인분을 거음에 활용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다 그랬으니 

일본의 경우도 1960년대까지도 회충 감염률이 전 인구의 70프로를 육박하는 상황이었고, 

그 이후에나 간신히 감염률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니, 

좁은 땅에 몰려 살며 인분거름까지 동원하여 집약적 농경을 하는 나라들의 숙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백제의 말기 수도인 사비성-. 

여기는 몇몇 고고학자 분들의 도움으로 (심상육, 젇훈진 선생)

부여 사비성내 여러곳 기생충란 검경을 한 바 있었느넫, 

사비성 안에는 조선시대 한성부 만큼이나 배제 문화층의 기생충 감염이 심했따는 이야기만 전해 둔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비성이 적어도 백제의 수도였던 시기 여기는 물난리가 매우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둘째는 이 곳 발굴 현장에 가보면 토양이 습한 진흙층으로 충란이 남아 있기 좋은 조건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 세째는 사비성의 당시 상황이 조선시대 한성부 만큼이나 많은 인구가 몰려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는 점이다. 

전근대 시기. 우리 조상들은 기생충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할 것이다. 

요즘 북한에서 온 탈북자 분들이 탈북직후 보면 회충 편충 감염률이 거의 백프로 가깝게 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를 우리는 엄청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회충감염률이 1980년대까지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감염이 거의 의미 없을 정도로 감염률이 떨어진것은 이제 겨우 40년 정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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