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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섬마을 비름빡 뜯기 2차 부산물은 한시漢詩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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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고가(古家) 벽지서 조선 한시…수군 일상·인명희생 다뤄 | 연합뉴스

태안 고가(古家) 벽지서 조선 한시…수군 일상·인명희생 다뤄, 임동근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20-07-23 11:43)

www.yna.co.kr

 

지난달에 서산 태안 앞바다 섬 가운데 하나인 진신도에 버려진 옛집에서 조선시대 수군 예비역 명단이 적힌 군적부軍籍簿를 찾아냈다 해서 제법 재미를 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문화재연구소가 수중발굴하러 보냈더니 아예 이참에 도서문화 육상조사로 재미를 더 보겠다는 심산인지, 가옥철거업 허가증까지 발급받고서는 이짝 조사에 더 매진키로 한 모양이라 

 

이번에는 군적부를 찾아낸 같은 폐가에서 당시 함께 찾아낸 한시 3편이랑 철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수습한 다른 한시 등 문자자료를 공개했다 이거겠다. 그러고선 아래와 같은 보도자료 띡 하고 던졌으니, 앞에 첨부한 우리 공장 기사는 이를 토대로 한다. 

 

황맥타양출가가黃麥打양<麥+羊>出家歌   보리를 찧어서 집집을 나서다

 

태안 신진도 고가 벽지에서 수군진촌 한시 다수 발견
- 벽지 추가 해체 과정에서 발견 / 7.24. 오후 1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공개 -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직무대리 심영섭)는 지난 6월 태안 신진도 고가(古家)에서 조선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힌 수군 군적부(軍籍簿)와 한시(漢詩)를 발견한 이후 수거된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군진촌(水軍鎭村)의 역사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다수의 한시 등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태안 신진도 고가는 상량문에 적힌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명문으로 1843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가에 거주했던 후손 최인복 씨의 증언에 의하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이며 260평의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소 외양간 1칸, 말(馬) 우리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실측결과, 현재는 ‘ㄷ’자형 구조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광 6칸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안흥진 수군을 관리했던 관가(官家)의 건물로 추정된다.
* 도광(道光): 청나라 도광제(道光帝) 선종의 연호

 

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사방 현사들이 많이 되돌아왔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한시 「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는 1843년 7월 16일 태안 신진도 안흥진 수군의 관가(官家)로 사용될 집을 짓고 다음 해 안흥진 첨사(安興鎭 僉使) 조진달(趙鎭達)의 재임 기간인 1844년에 잔치를 베풀어 사방의 손님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 안흥량(安興梁): 태안 앞바다 일대 신진도, 마도, 관장목을 연결하는 물길이 험한 구역
* 첨사(僉使): 수군을 관리하고 통솔하던 종3품의 벼슬을 가진 관리

 

무량無量..불교 색채가 짙은 말인데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다.



또 다른 한시의 제목은 「黃麥打麥羊 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 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인데, 내용에는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라는 문장이 있어 이 가옥이 안흥진 수군을 관리하기 위해 군포(軍布)나 곡식을 거두어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군포(軍布): 군복무를 직접하지 않는 병역 의무자가 그 대가로 납부하던 삼베나 무명

안흥진 수군의 중요 임무 중 하나였던 조운선의 안흥량 통과를 위한 호송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과 이를 비유한 한시도 있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오언절구 한시 「조명간」(鳥鳴澗, 새가 시냇가에서 울다)의 형식을 빌려 능숙한 초서체(草書體)로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 인간계화락 야정춘산공)라고 하여 수많은 인명이 안흥량 앞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왕유(王維) 시 원문

  인한계화락(人閑桂花落,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 꽃이 떨어진다),                         
  야정춘산공(夜靜春山空, 밤은 깊은데 봄의 산도 적막하다)

 

* 초서체(草書體): 필획을 가장 흘려 쓴 서체로 획과 획의 생략이 심함

 

인간계화락人閑桂花落.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 꽃이 떨어진다. 왕유 시 한 구절이다.



실제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인 현종 8년 윤 4월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사고가 많은 해역의 특성으로 인하여 수군과 조운선을 관리하는 이 고가(古家)에서는 ‘無量壽閣’(무량수각: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건물)’이라는 문구도 발견되었다.

 

문제의 신진도 폐가
문제의 폐가 평면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태안 신진도 수군진 유물 발견을 계기로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안흥진 수군과 관련한 개인문집과 문학작품을 찾아 번역할 예정이다. 관련된 주요 문집으로는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백곡집, 栢谷集』,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 『최와집, 最窩集』,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은송당집, 恩誦堂集』 등이며, 수군진의 문학과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각壽閣. 건물 이름 같은데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7월 24일 오후 1시에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하는 「제2회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학술대회에서 해당 유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정조시대 안흥진성과 그 전면 신진도 수군진촌



태안 신진도 고가 인근 초등학교 주변으로는 1970~80년대까지만 하여도 조선시대의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와집이 다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해당 지역이 수군진과 관계되는 관리와 수군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판단되어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추가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1915년 지도에 등장하는 신진도新津道. 글자 자체로 보면 이 섬에는 나루가 나중에 생긴 듯하다. 다른 섬에 초소 같은 본부가 있다가 나중에 이 섬으로 옮겨오지 않았나 하는 심증이 있다. 

 

이를 보면 이 폐가가 바로 안흥진이라는 난행량을 관장하던 조선시대 수군 지휘소였음을 짐작한다. 이를 보도자료에서는 관가官家 건물로 추정했거니와,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며, 당연히 해양연구소에서는 그리할 것으로 본다. 나아가 주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도 필요한 것으로 짐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해조사과장 이은석은 주로 경주를 무대로 암약하며 발굴에 종사하던 이라, 조만간 섬에서 발굴조사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릴 듯하다. 

 

그나저나 해양연구소가 보도자료 야마를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비름빡 군적부 섬마을 폐가, 알고보니 조선시대 수군사령부였다.

이 비슷한 야마로 나가야 했다. 무슨 비름빡 한시?

이래서 관공서는 끊임없는 홍보교육을 받아야 한다.

 

안흥량 관장목 

 

補한다. 

 

문제의 왕유시를 찾아보니, 왕유시 구절 중 일부를 그대로 옮겨왔다. 

 

鳥鳴澗조명간 새 지저귀는 골짜기 

人閒桂花落,夜靜春山空。
月出驚山鳥,時鳴春澗中。

 

맘 느긋하니 계수꽃 지고 

고요한 밤 봄산은 비었네

달 뜨자 산새들 놀라  

더러 봄 골짝에서 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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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이미자 영원한 명곡 섬마을 선생님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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