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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뼈를 갈아넣은 화순 도산 구석기유적 정리

by taeshik.kim 202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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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식 THE HERITAGE TRIBUNE
ts1406@naver.com


사진 제공 조선대박물관. 이하 같음


 
조선대학교박물관이 박물관 16번째 유적조사보고서로 『화순 도산 구석기유적 –2007, 2009년 발굴-』을 최근 발간했다고 2일 밝혔다.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도산마을 일대에 자리한 이 유적은 위선 그 조사 내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7년 7월 : 지표조사(화순-능주간 도로확장공사 구간의 갱신세층에서 버금공모양석기 등 발견)
1999년 7~11월 : 제1차 발굴조사(위 구간에서 2개의 구석기문화층 확인)
2007년 4~9월 : 제2차 발굴조사(이양-능주간 도로확장공사 구간에서 기존 문화층을 포함한 총 4개의 구석기문화층 확인)
2009년 2~7월 : 연장 발굴조사(제2차 발굴조사에서 못다 마친 조사 마침)





이번에 나온 조사보고서는 2007년과 2009년 발굴을 같이 정리한 것이다. 1999년에 있는 제1차 발굴은 2002년에 나온 보고서로 수록됐다.

이로써 도산유적은 발견에서 연장 발굴까지 13년이 걸렸으며, 2009년에 끝마친 추가 발굴에 대한 보고서는 마지막 조사일 기준으로 근 15년이 걸렸다.

이번 보고서에 담은 도산유적 2차·연장 발굴조사 성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마지막 간빙기 이후 쌓인 약 5m 두터운 퇴적층에 4개 구석기문화층이 차례로 남았으며, 이는 약 7~3만 년 전에 속하는 문화층으로 판단한다.

2. 유물 분포범위는 길이 약 200m, 폭 약 20~50m로 확인되었으며, 공사 구간 밖 도산마을과 그 둘레 논 쪽으로 문화층이 연속되고 있어 유적 규모는 최소 2만㎡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3. 유적 앞을 흐르는 지석천 유역을 따라 20곳 이상 구석기유적이 군집을 이루고 있음을 지속해서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4. 각각 1천546점과 1천283점 유물이 각각 출토된 제1문화층과 제2문화층의 석기갖춤새는 몸돌, 격지, 조각돌, 부스러기처럼 버리는 것이 80% 내외인 점과 더불어 다수의 돌망치, 모룻돌과 같은 연장의 존재, 그리고 다양한 붙는 석기의 사례는 유적이 살림터이자 석기제작소였음을 알려준다.

5. 제1·2문화층은 주먹도끼, 주먹찌르개, 주먹자르개, 찍개, 여러면석기 등으로 대표하는 이른바 주먹도끼석기군과 더불어 지금껏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인 주먹긁개, 주먹밀개, 주먹홈날, 주먹톱니날, 주먹뚜르개가 주류를 이룬다. 즉, 기존에 주로 격지나 조각돌을 몸체로 삼아 만든 잔손질석기(격지석기)의 몸체가 자갈돌인 경우가 상당수 존재하여 기존의 양상과는 구별되는데, 이는 무게가 5kg이 넘는 초대형 주먹찌르개(보고서 뒤표지의 석기)와 대형 몸돌, 그리고 대형 격지로 만든 1kg 내외의 주먹자르개, 3kg이 넘는 초대형 돌망치의 출토 사례와 함께 유적 성격을 잘 대변한다.




6. 절대연대가 55,000년 전으로 측정된 제2문화층 뗀돌도끼는 신석기시대 돌도끼 제작기법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최근까지 구석기유적에서 발견된 돌도끼 연대는 일본열도의 경우 약 36,000년 전이고, 한반도의 경우는 약 30,000년 전 후기구석기시대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는 기존 사례보다 약 2만 년이나 더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중기구석기시대에 이미 그러한 기술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7. 유적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돌감은 석영맥암, 규암, 안산암질용암으로 특히 안산암질용암으로 만든 석기는 아직까지 다른 유적에서 보고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제1문화층부터 제3문화층까지 계속 출토하여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진 고유의 종류로 평가된다.





종합하자면, 제1·2문화층 석기군은 중기구석기시대 늦은 단계에 속하는 석기의 종류와 구성 및 제작기술을 잘 보여주고, 전기구석기시대의 석기 종류가 잔존하면서 후기구석기시대 돌날석기군과 밀접하게 관련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한편 맨 위 제4문화층은 돌날몸돌과 좀돌날몸돌을 포함하고 있어 유적이 후기구석기시대까지 구석기인의 터전으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영산강 유역에서 중기구석기시대 후반부터 후기구석기시대 후반까지 고인류의 삶과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였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소중한 학술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 보고서 부록에는 도산유적과 동일한 사유로 2004년과 2007년에 각각 시·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화순 대우기유적’에 대한 성과도 담았다.


이상은 이 보고서 발간에 즈음한 조선대박물관 문세영 소식 전언에 내가 부탁해서 관련 자료 첨부를 요청해서 이뤄진 것으로 말할 것도 없이 문 선생이 정리한 것이다. 

그러면서 문 선생은 다음과 같은 개인 소회를 적어왔으니, 그대로 전재한다. 
 

문세영

 
개인적으로는 당시까지 발굴조사와 보고서작성의 경험이 전무하고, 박물관 소속도 아니었으며, 교내 유일한 고고학 전공자로서,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교수님의 지도로 얼떨결에 해당 보고서 작업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렇게 발간까지 약 3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정말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결국은 이렇게 끝을 보게 되었다. 여러모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조금 위안이라면 고향 ‘화순’에 위치한 유적이라는 점과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랄까. 

어쨌든 턱 없이 부족한 인력과 예산, 박물관 내부 사정 등의 제반 한계로 보고서 발간이 한참이나 늦어지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이와 같은 조사 성과를 뒤늦게나마 학계와 일반에 보고할 수 있게 되어 천만다행의 일이라 생각한다.

덩달아 마침 박물관에서는 내년 초 재개관을 목표로, 현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상설전시실 확장·개편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본인은 전시실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고유물 몫을 혼자 담당한 바, 여기에서 도산유적의 성격을 잘 대변하는 유물들을 충실히 선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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