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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축과 작물 이야기

사육곤충 두 가지: 누에와 꿀벌

by 신동훈 識 202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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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고고학에는 포유류나 조류만 다루는 것은 아니고, 

곤충도 다룬다. 

대표적인 것이 누에와 꿀벌이다. 

누에는 비단을 짜기 때문에 꿀벌보다는 훨씬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받아들여지지만

어려운 시절 단맛을 맛보게 해주었던 꿀벌 역시 그 공헌이 만만치 않다. 
 



누에는 그 기원이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이고 (화북지역이다)

꿀벌은 기원지가 동아시아가 아니다. 

정확히는 서아시아 지역이며 여기서 동쪽으로 흘러들어왔다. 

대체로 한나라 때 서역이 열리면서 양봉이 흘러들어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고고학적 유물로 그 존재가 자주 확인되는 누에와 달리

꿀벌은 기원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의 기록은 한국기록이 아니라 일본에 남아 있다. 

백제의 부여풍이 일본으로 건너가 양봉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대략 7세기 중반에는 한반도에서 벌치는 법을 알았던 셈인데

이것이 얼마나 더 거슬러 올라갈지는 알기가 쉽지 않다. 
 



그 뒤에는 신라 신문왕의 폐백품 기록에 꿀이 나오고, 

고려시대에도 꿀 기록이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꿀은 상당히 많이 소비되었던 것이 쇄미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오희문은 난리통에 도망가 쫄쫄 굶는 와중에도 

선물 받는 목록에는 자주 꿀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중기 당시 꿀생산량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오희문은 빈궁한 와중에 살마 남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해보는데

그 중에는 양봉도 있다. 

토종벌통을 놓아 꿀을 따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지만

나중에는 제법 성공하여 주변에 나누어주기도 하니

조선시대의 양봉은 초심자가 해도 꽤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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