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03)
이른 봄 두 수[春早二首] 중 첫째
[金] 단계창(段繼昌) / 김영문 選譯評
물고기 수면에 뜨고
오리 머리 녹색인데
아지랑이 티끌 날리며
회오리바람 솟구치네
울타리 뒤에 자리 잡은
서산의 산가에는
살구나무 끝가지에
붉은 빛 처음 보이네
魚兒水汎鴨頭綠, 野馬塵飛羊角風. 西崦山家籬落背, 杏梢初見一分紅.
매화가 지고 나면 이제 천지 곳곳에 꽃잔치가 벌어진다. 모든 봄꽃이 찬란하게 온 산천을 뒤덮는다. 살구꽃도 꽃잔치에 참여하여 어여쁜 얼굴을 뽐낸다.
“묻노니 술집은 어디에 있느뇨? 목동이 저 멀리 살구꽃 마을 가리키네.(借問酒家何處在, 牧童遙指杏花村.)”
만당(晩唐) 두목(杜牧)의 절창 「청명(淸明)」이다. 비오는 봄날 술 고픈 나그네 앞에 살구꽃 마을(杏花村)이 멀찌감치서 환하게 다가선다. 또 당나라 나은(羅隱)은 “온기가 차례로 봄날을 재촉하자/ 매화는 이미 지고 살구꽃 새롭네(暖气潜催次第春, 梅花已谢杏花新)”(「살구꽃杏花」)라고 읊었다.
붉은 빛이 처음 비친 살구나무 곁에는 산가(山家)의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그 옆 시내의 따뜻해진 봄물에 오리가 헤엄친다. 수면 가까이 떠올라 활발하게 노니는 물고기를 녹색 머리 청둥오리가 바짝 뒤쫓는다. 생기발랄한 생명의 현장이다. 돌아보면 들판에 아지랑이가 가득하고, 텅 빈 하늘 위로 회오리바람이 치솟는다. 해동(解凍)한 대지의 왕성한 숨결이다.
이 시를 쓴 단계창은 금나라 사람이다. 금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라 시문(詩文) 수준이 낮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뛰어난 작품이 상당히 많다. 여진족은 만주에서 중국 중원에 이르는 대제국 금나라를 건설하고 남송을 속국으로 삼았다. 금나라 대문호 원호문(元好問)이 편집한 『중주집(中州集)』에는 전통 한시 2062수(251명)가 실렸다. 그중 송나라 사신들의 작품 84수를 제외한다 해도 금나라 문인의 작품이 거의 2000수에 가깝다. 실로 하나의 독립된 문단을 이루었다 할 만하다. 단계창의 시도 『중주집』에 실려 있는데 당시 유행한 송시(宋詩)의 특성을 드러내면서도 보다 섬세하고 청신한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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