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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삼국시대 고분 출토 삽자루 '살포'는 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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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두리 고분 유물 출토 현황>


<'살포,' 고분 출토 '삽자루'의 정체>

고흥 안동고분 대형 살포 유물 출토

[연합뉴스 2006-03-27 15:38]

 

(고흥=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금은 보기 힘든 농기구로 '살포'란 것이 있다.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은 "논에 물꼬를 트거나 막을 때 쓰는 농기구. 두툼한 쇳조각의 머리쪽 가운데에 괴통이 붙은 모가 진 삽으로 긴 자루를 박아 지팡이처럼 짚고 다닌다"고 살포를 설명한다.


그런데 이런 살포가 삼국시대 한반도 고분에서 심심찮게 출토되고 있다. 25일 현장이 공개된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소재 '안동고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살포는 동-서 방향으로 장축(長軸)을 마련한 석실(石室·돌로 만든 무덤방) 중 동쪽벽과 인접한 남쪽 벽면 바닥을 따라 놓여 있었다.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은 동쪽벽에 닿아 있었으며, 자루는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살포가 마주하는 반대편 북쪽 벽면에는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 큰칼)와 도끼, 창과 같은 철로 만든 무기류가 자리잡았다. 살포와 이들 무기류 사이에 위치하는 동쪽 벽면에 치우친 곳에서는 철로 만든 갑옷류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안동고분 출토 살포는 아직 수습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길이는 180㎝ 가량이며, 머리 부분은 물론이고 긴 자루 또한 모두 철이었다.


최근 발굴된 삼국시대 살포 유물로는 2003년 충남역사문화원이 조사한 공주 수촌리 고분군 중 토광목곽(土壙木槨) 구조인 수촌리 Ⅱ-1호분 출토품이 있다. 수촌리 살포는 가죽 직물로 겉을 감싼 삼지창(三枝槍)과 나란히 놓인 상태로 발견됐다. 


수촌리건 고흥 안동고분이건 함께 출토되는 유물이 모두 무기류라는 점은 살포가 갖는 기능을 추정할 때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살포 유물로는 경상대박물관이 조사한 경남 합천군 옥전 M3호분이라는 5세기말 가야계 무덤 출토품을 들 수 있다. 이 고분은 살포 뿐만 아니라 환두대도만 해도 10여 자루나 부장했으며, 이중 절반은 금 제품이었다. 길이 125㎝인 옥전 무덤 살포 역시 환두대도라는 무기류와 함께 발견된다는 점이 수촌리 무덤이라든가, 안동고분과 공통점이다.


반면 4-5세기 백제 무덤인 천안 용원리 고분 출토 살포는 이들과는 우선 모양새부터가 현격히 다르다. 나무 막대를 사용했을 자루는 삭아서 없어지고 몸체만이 남아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농기구'로서의 살포로 분류되고 있다. 그렇다면 살포는 왜 이런 삼국시대 무덤들에서 출토되고 있을까?


그 기능에 대한 실마리는 의외로 조선시대 자료들을 통해 풀리고 있다. 왜냐하면 왕이 신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 중에 바로 살포가 있기 때문이다. "긴 자루를 박아 지팡이처럼 짚고 다닌다"는 《표준국어대사전》의 기술은 바로 조선시대에 사용된 살포의 전통을 언급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경우 살포는 누구나 휴대할 수는 없다. 대단한 고위급 전·현직 관료가 아니면 휴대 자체가 금지될 정도로 상징성이 높았다.


이를 통해 삼국시대 고분들에 더러 출토되고 있는 살포 또한 그 기능이 기본적으로 같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한상 동양대 교수는 "살포는 다분히 의장적인 성격을 지닌 이른바 위세품(威勢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위세품(prestige goods)이란 글자 그대로 그것을 착용하거나 휴대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권세를 징표하는 물건을 말한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에 그랬듯이 그보다 약 1천년가량을 올라간 삼국시대에도 살포는 휴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엄격히 제한됐다는 뜻이다.


이런 의장적인 상징성과 함께 살포는 환두대도와 같은 무기류와 함께 출토가 된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의미도 짙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살포가 그렇듯이 환두대도와 같은 칼 또한 실용성은 현격히 떨어진다. 그렇지만 환두대도와 같은 칼은 요즘의 무속사회에서도 신내림을 할 때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듯이 삼국시대에는 권력자라고 하면 그 지역의 종교사제 역할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종교적 권능을 표시하는 대표적 기물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환두대도와 같은 칼은 특히 도교 신학에서는 동경(銅鏡)과 함께 신체(神體)를 구성하는 양대 기물이라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그런데 실로 절묘하게도 고흥 안동고분에서는 동경과 환두대도가 세트로 출현했다. 이는 이것들과 함께 출현한 살포라는 유물 또한 같은 권능을 지닌 물건이었다고 간주해도 좋은 대목이라 할 것이다.


이 안동고분에는 또 석실 벽면을 주칠(朱漆)이라 해서 온통 붉은물감으로 칠한 흔적이 드러나고 있는데, 무덤을 이렇게 장식하는 것 또한 도교신학과 밀접하다. 같은 문화권역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에서는 아예 죽은 자를 위해 주사(朱砂)라고 해서 황화수은(HgS)이 주성분인 붉은물감을 그릇 가득히 담아놓기도 했다. 


주사나 주칠은 도교신학에서는 영생불멸을 상징하는 신약(神藥)이었다는 점에서 같은 종교적 전통(도교)을 지닌 동경-환두대도가 안동고분에 가미돼 있다는 사실은 이 무덤이 축조되던 5-6세기 무렵 이 지역 종교적 특성까지 엿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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