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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삼국지三國志와 배송지裴松之, 위략魏略의 착시錯視

by 초야잠필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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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志步骘传残卷,东晋隶书抄本,高24.2厘米,宽42厘米,现存25行,440字,保存了传记的后半部和评语的前半部,藏经洞出土,敦煌研究院藏。

 

삼국지 이전의 사서는 사기와 한서일텐데, 사기와 한서에는 조선전만 있을 뿐 동이전은 없다. 중원의 지리적 인식이 한반도 북부에 머물러 있었던 탓일 것이다.

그 다음 후한서가 있지만 주지하는바와 같이 후한서는 성립연대가 늦어 한서의 다음 타순은 삼국지이다.

삼국지는 진수가 저술했는데 그의 생몰연대는 233년 ~ 297년이다. 대략 삼국시대에서 서진 시대에 걸친 인물로서 삼국지도 그의 생애 후반 어느 시점에 저술되었을 것이다.

이 삼국지에서 최초의 동이전이 입전된다. 중국사의 지리적 인식이 한반도 북부를 넘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까지 전개되는 순간이라 할수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한반도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이 진수의 삼국지에 주를 붙여 놓은것이 배송지이다.

삼국지 원문에 붙여 놓은 배송지의 주를 보면, 진수의 원문에는 간단히 기술되어 있는 내용에 대해 엄청나게 자세한 사실을 더하여 한군현 이전 고조선의 발전과 멸망, 그리고 준왕의 남천 과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모두 배송지 주에 기록된 것이고 원문에는 매우 소략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문과 주석이 서로 상충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이 배송지 주는 진수의 삼국지에 대한 후대의 주석인데다가 그 내용이 엄청나게 자세하고 분량이 많아 이 주에 기록된 내용은 진수의 삼국지보다 성립연대가 늦어 사료적 가치가 비교적 낮다, 라고 착시를 일으키기 딱 좋다.

하지만.

삼국지 동이전에서 배송지 주의 대부분은 사실 "위략"을 인용한 것이 많다. "위략"은 어환(魚豢)이라는 사람이 쓴 기록이라는 것인데 실존한 기록물임은 틀림없고 후대에 망실되어 지금은 편집본만 남아 있다.

이 어환이라는 사람 생몰연대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어환의 활동 시기는 진수와 별 차이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촉한에서 활동하다가 서진시대까지 출사한 진수와 달리 어환은 원래 조위에서 활동하다가 서진이 선 이후에는 공식 활동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수와 어환은 거의 동시기에 활동한 사람이고 이들이 저술한 "삼국지"와 "위략" 역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지 동이전 원문은 진수, 주석은 배송지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송지 주에 쓰인 내용은 성립시기가 늦고 진수의 원문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쉽다.

하지만, 배송지가 어환의 위략을 그대로 들여다 쓴 것이 분명하므로 사실 삼국지 동이전에서 원문과 주석의 사료적 가치는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도 좋은 것 아닐까 한다.

삼국지 주석이 마치 진수의 원문보다 성립시기가 늦은 것이라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동이전에 엄청나게 많이 기술된 내용이 주로 배송지 주에 기록된 점, 그리고 배송지는 진수보다 훨씬 늦은 시기의 사람이라는 점 때문인데.

사실 배송지는 어환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떠든것일 뿐이므로....

삼국지에서 원문과 주석의 사료적 가치는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도 되는 것 아닐까. 그런 관점을 가지고 배송지의 주석을 다시 보게 되면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요시노가리 공사 현장 (2004). 삼국지 동이전 왜전에 나오는 야마타이국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요시노가리 유적 복원은 사실 알게 모르게 삼국지 동이전 기술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필자는 요시노가리를 2000년대 초반 두차례 방문했는데 그때 이렇게 열심히 공사 중이었다. 두번째 방문때는 첫번째 방문때 보다 훨씬 복원의 정도가 많이 진전되어 있었는데, 야요이시대 도시인 이 유적의 복원은 삼국지 동이전의 기술에 착안한 바 많다는 것은 가보면 금방 알게 된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일본 고고학 복원 결과물은 (특히 지자체가 입장료 받고 운영하는 유적지 공원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당대 인간의 욕망이 너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서.. 오히려 우리 쪽에서 복원한 결과물이 사실에 보다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복원의 진실성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이 한국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 본다. 요시노가리 유적의 위상에 해당하는 것이 아마 한국에서는 송국리 유적 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두 유적의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면 복원에 대한 양국의 시각의 차이를 여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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